[어둠속의 속삭임]은 2005년에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팬영화를 만들었던 HPLHS(H. P. Lovecraft Historical Society) 일당들이 만든 신작입니다. 전작 [크툴루의 부름]이 20년대 무성영화를 흉내낸 영화라면, [어둠속의 속삭임]은 40년대 B 영화를 흉내냈죠.


내용은 판타지보다는 SF에 가깝죠. 유고스라는 외행성을 식민지화한 미-고라는 외계인이 버몬트의 시골 농장 근처에 내려 와서 여러 가지 섬뜩한 일들을 하는데, 앨버트 윌마스라는 민속학자가 그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교할까요? 전에도 그랬지만, 대충 흉내만 내는 수준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든 아마추어들이 옛날 흑백 영화를 흉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죠. 그들도 알고 있을 거고, 또 그렇게 완벽한 모방작을 만드는 게 의미없는 일일 수도 있어요.


작품성이나 오락성보다는 팬심이 더 중요한 영화입니다. 일단 그들은 러브크래프트의 비전과 당시 시대상을 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살리고 싶어해요. 시대배경은 정말로 1920년 말이고 러브크래프트가 그린 세부 묘사는 충실하게 살아납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대사 위주로 흘러가도 별 상관 없지요.


그렇다고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영화적 복제라는 말은 아닙니다. 원작은 장편영화의 각본이 되기엔 좀 짧고, 지금 보기엔 시대에 뒤쳐진 구석이 많죠. 예를 들어 원작의 반전을 보고 충격 먹는 관객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유고스와 미-고는 고풍스럽게 귀여울 뿐, 정말 충격적이지는 않거든요.


영화는 몇 가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실존인물인 찰스 포트를 등장시켜 조연으로 삼아요. 그리고 원작의 결말 뒤로 계속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인 윌마스 역시 영화에 어울리는 캐릭터로 변형되었고요.


그러는 동안 아마추어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윌마스를 보다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로 만든 건 좋은데, 그러다보니 인물의 성격이 갈팡질팡해요. 원작과 각색물 사이에서 주인공의 행동동기가 약해지기도 하고요. 서스펜스를 만들기 위해 넣은 몇몇 장면은 기교가 심하게 떨어져서 그냥 갑갑하게 느껴지고요. "저 인간들은 왜 저기 서서 저러고만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여전히 이 영화의 접근법이 그냥 옳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식 고풍스러운 SF/판타지라면 1930년대식으로 풀어야죠. 그게 꼭 현대 관객들을 자극할 정도로 무서울 필요도 없어요. 책으로 원작을 읽었던 독자들의 향수와 팬심을 자극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11/07/25)


★★☆


기타등등

HPLHS 영화사 로고 밑에 박혀 있는 라틴어 문구 'Ludo Fore Putavimus'의 의미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We thought it would be fun"라고 합니다. 귀여워 죽겠어요, 이 사람들.

 

감독: Sean Branney, 출연: Matt Foyer, Stephen Blackehart, Barry Lynch, Andrew Leman, Joe Sofranko, Lance J. Holt, Autumn Wendel, Daniel Kaemon


IMDb http://www.imdb.com/title/tt149887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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