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경력의 기술이고, 재능의 예찬입니다. 하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는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습니다. 바르다는 제인 버킨이라는 소재를 그냥 충동적으로 고른 것처럼 보여요. 이미 촬영에 들어간 영화 초반에도 바르다는 버킨의 무엇 때문에 자신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국적인 억양이 매력적인 중성적인 미인이라서? 정말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배우 제인 버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영화를 고른 사람들은 실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버킨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요. 영화 제목도 언급 안 되고 자료 클립도 없습니다. 사생활에 대한 정보는 그보다 조금 더 많지만 그것들도 고속열차처럼 휙휙 지나갑니다. 바르다는 제인 버킨의 전기를 쓰는 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는 절반 정도 대화이고 게임입니다. 바르다는 카메라 뒤에서 버킨과 여러가지 소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버킨은 중간중간에 바르다가 제공하는 가짜 영화들 안에서 다양한 종류의 인물들을 연기합니다. 그리고 이 가짜 영화들의 클립들 중 상당수는 버킨과의 대화에서 거의 즉흥적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대화 중 실직자 이야기가 나오면 실직자를 테마로 한 로렐과 하디 패러디가 나오고, 서부극이 언급되면 캘러미티 제인이 주인공인 서부극이 나오는 식이죠. 가끔 바르다는 버킨에게 같이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가 누구냐고 묻고, 정말로 그 배우를 데려와 상대역으로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장 피에르 레오가 불려옵니다.) 심지어 버킨이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던 이야기를 바르다에게 들려주면 그게 실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해요. [아무도 모르게]가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나 봅니다.

이 역할들은 연기 견본 같은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연출 견본도 아니에요. 제인 버킨은 메릴 스트립과 같은 카멜레온이 아니고, 바르다 역시 장르 전문가는 아니죠. 그런 사람들이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다양한 영화나 캐릭터에 도전해보는 겁니다. 아마 바르다의 영화 중 총격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작품도 없을 거예요. 진지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아녜스 바르다라는 여성 감독과 제인 버킨이라는 여성 배우의 관계입니다. 바르다는 이 영화에서 마치 자신의 뮤즈를 그리는 화가 같기도 하고,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동료와 수다를 떠는 아줌마 같기도 하고, 예쁜 인형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며, 여자주인공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는 친절한 대모님 같기도 합니다. 이 다양한 관계의 변화는 두 여성 예술가의 관계가 어떤 스펙트럼 안에서 맺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0/11/07)

★★★

기타등등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엄청나게 위압적인 목소리도 "거기 뒤에서 껌 씹는 소리 내지 마요!"라고 고함을 지르더군요. 그 때문에 영화가 두 쪽으로 쩍 갈리는 것 같았죠. 앞으로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아저씨의 기억이 스토커처럼 따라 붙을 것 같아요.


감독: Agnès Varda, 출연: Jane Birkin, Jean-Pierre Léaud, Philippe Léotard, Farid Chopel, Alain Souchon, Serge Gainsbourg, Laura Betti, Agnès Varda, 다른 제목: Jane B. for Agnes V.

IMDb http://www.imdb.com/title/tt009329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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