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2010)

2010.11.23 23:40

DJUNA 조회 수:19603


송정우의 [여의도]를 보면서 저는 왜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왜 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영화가 나빴기 때문은 아닙니다. 아니, 나쁘기도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도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고 그게 꼭 만든 사람들 잘못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의도]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전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요. [여의도]는 이상할 정도로 공허하고 투명한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주제와 동기는 충분해보입니다. 가혹한 자본주의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 남성의 고민과 고통을 그려보자는 거죠. 하지만 이건 목표이지 영화가 아닙니다. 목표만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여의도]에는 그게 없습니다. 


아직도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요약해드리죠. 주인공은 황우진이라는 펀드 매니저인데, 아버지 병원비를 대느라 사채빚에 시달리고 있고 직장에서는 곧 쫓겨날 판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슈퍼맨처럼 자신을 돌봐주었던 어린시절 친구 강정훈이 나타나요. 그 뒤로 황우진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고 그는 슬슬 운이 트이는 걸 느낍니다.


짐작하시겠습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으세요? 아마 몇몇 분들은 유명한 모 영화를 언급하며 "표절이다!"라고 외치고 싶으실 겁니다. 표절은 아닙니다. 그냥 흔해 빠진 이야기지요. 다시 말해 영화를 보기도 전에 관객들이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겁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굉장한 반전을 숨긴 것처럼 심각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요. 관객들은 보면서 갑갑해 미칠 지경이 됩니다. 


물론 영화가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위에 간접적으로 언급했던 모 영화와 그 영화의 원작소설도 뻔한 이야기를 재료로 삼았지만 뻔하지는 않았지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뻔한 이야기에 자기만의 무언가를 심습니다. [여의도]에도 그런 게 있었다면 그 뻔한 이야기는 정당화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없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셰입니다. 상투적이지 않은 게 없어요. 직장묘사에서부터 아내와의 관계, 캐릭터의 묘사와 액션의 방향, 자칭 반전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이 미리 꿰뚫어 볼 수 없는 건 없습니다. 너무나 투명해서 그게 오히려 개성처럼 보여요. 설마 이건 일종의 예술적 실험인 겁니까?


배우들에게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김태우는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김태우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징그러울 정도로 김태우 같습니다. 심지어 그는 홍상수 영화에서도 이렇게 김태우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김태우는 그냥 김태우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김태우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밋밋해요. 다른 배우들도 엉망으로 쓰인 대사와 얇은 캐릭터, 나쁜 연기 지도 때문에 고전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거라는 건 각본만 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다들 고생을 사서 한 건지. (10/11/23)



기타등등

네, 태그는 스포일러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 영화의 반전이 뭔지 이미 아시잖습니까. 


감독: 송정우, 출연: 김태우, 박성웅, 황수정, 고세원, 김산호, 다른 제목: Yeouido, Yeouido Islan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Yeouido.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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