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소금 (2011)

2011.08.26 01:35

DJUNA 조회 수:20932


두헌은 은퇴한 뒤 식당이나 차릴 생각으로 요리학원을 다니는 중년남자입니다. 거기서 그는 조카딸 뻘인 전직 사격선수 세빈을 만나 호감을 품습니다. 사귀자고 할 염치는 없고, 졸업하면 같이 동업이나 하자고 꼬실 정도죠. 하지만 두헌은 전직 조폭이고, 세빈은 그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고 파견된 스파이. 연합조직의 보스가 죽고 후계자로 두헌이 지명되자, 세빈은 감시임무를 접고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이야기죠. 그리고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공식입니다. 보나마나 이들은 곧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갈등하고... 이런 영화들은 여성전문가들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남자들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단 말이죠. 똑같은 이야기에서 성별을 바꾸면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말입니다.


[푸른소금]은 [색,계]처럼 불편한 영화는 아닙니다. [색,계]처럼 관객들을 자극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요. 영화는 그냥 무난하게 갑니다. 두헌은 전직 조폭이지만 그렇게 나쁜 인물도 아니고, 세빈도 상황을 보면 그렇게 임무에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이 갈등하면서 같이 놀아도 대충은 이해가 됩니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캐릭터가 심심해져버립니다. 이 영화에는 알리바이가 너무 많아요. 두헌은 배반과 복수가 판을 치는 갱들의 전쟁에 말려들었습니다. 온갖 끔찍한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영화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에 늘 그를 빼돌립니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영화는 세빈이 두헌에게 매섭게 맞서지 말아야 할 핑계들을 꾸준히 주는데, 그러다 보니 캐릭터와 동기의 선명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인 우선순위는 파괴됩니다. 보다 보면 이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싫어져요.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알기 싫어지는 겁니다. 짜증만 나고 관심이 안 가요.


영화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오래 끓여 푹 풀어진 라면을 닮았습니다. 여기엔 액션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로맨스도 있고 드라마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각각의 재료들은 갈등을 만들고 대비를 이루는 대신 그냥 산만하고 심심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이름 있는 수많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하며 폼을 잡지만 정작 후반부에 가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갈등들은 중간에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도 복선이나 계획 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다가 얼렁뚱땅 마무리지어지고요. 이 영화의 맥빠지는 결말은 올해 나온 영화들 중 최악입니다.


영화는 예쁩니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완벽하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공간 안에서 완벽한 미장센으로 찍혔죠. 세경 역의 신세경과 세빈의 친구로 나오는 이솜이 여기저기를 다니며 까부는 장면들은 그대로 캡쳐해서 보그 화보로 써도 먹힐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예쁜 모양은 영화의 드라마나 액션, 로맨스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예쁘기만 할 뿐입니다.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죄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오로지 그것만 있으면 곤란하죠.


배우들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송강호는 노련하지만 무개성적이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신세경은 예쁘지만 연기해야 할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고, 이 와중에 선배들에게 뭔가 유용한 걸 배웠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등장하는 것만으로 일이 끝나버리니까요. (11/08/26)


★★


기타등등

1. 차라리 두헌을 빼고 세빈과 친구 은정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적어도 보다 강한 동기와 액션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세빈을 빼고 두헌과 옛 동료들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끌었어도 보다 힘있는 이야기가 나왔을 거고요. 아무리 영화를 노려 봐도, 두헌과 세빈이 같이 있어서 좋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2. 제목은 닭살 돋습니다. 주인공들이 계속 제목을 설명하려 시도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3. 결말은 맥빠지기도 하지만 의미있는 해결도 아닙니다. 스포일러를 건드리게 되니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지만.

 

감독: 이현승, 배우: 송강호, 신세경, 천정명, 이종혁, 김민준, 윤여정, 이경영, 김뢰하, 오달수, 이솜, 다른 제목: Hindsight


IMDb http://www.imdb.com/title/tt201531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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