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괴물 The Undying Monster (1942)

2010.09.17 22:51

DJUNA 조회 수:10515


존 브램의 [죽지 않는 괴물]은 20세기 폭스사에서 만든 [울프 맨] 짝퉁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좀 부당하긴 해요. 이 영화에는 제시 더글러스 캐루시라는 작가가 쓴 원작소설이 따로 있고, 당시 늑대인간 영화가 [울프 맨]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호러에 별 관심 없던 20세기 폭스사가 갑자기 늑대인간 영화를 들고 온 건 [울프 맨]의 성공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런 선입견을 품고 영화를 봐도, [죽지 않는 괴물]의 도입부는 예상 외로 재미있습니다. 괴물의 저주가 떠도는 옛 저택 밑의 절벽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여자주인공이 마차를 몰고 달려가는 이 도입부는 RKO의 발 루튼 영화와도 다르고 유니버설 영화와도 다른 고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과도한 장식 없이 단도직입적이고 명쾌하면서도 호러 장르 고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아요. 게다가 남의 도움 따위는 받지 않는 씩씩한 여자주인공까지 있으니, 이렇게 그대로 나갔어도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봐요.


하지만 도입부가 끝나면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앞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던 헬가 해먼드는 뒤로 물러나고, 정체불명의 괴물에 의한 상해사건은 스코틀랜드 야드에 보고됩니다. 사건을 맡으러 해몬드 저택으로 내려간 건 스코틀랜드 야드의 과학탐정 로버트 커티스와 그의 조수인 노처녀 크리스티. 여기서부터 영화는 은근슬쩍 [엑스 파일]의 코미디 버전 비슷해집니다. 단지 성별이 바뀌었죠. 모든 걸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건 커티스이고 초자연현상에 관대한 건 크리스티니까요. 


[울프 맨]식 본격 호러를 기대하신 분들은 실망하셨겠지만, 이후로 전개되는 추리 과정은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발랄하고 빠르고 잔재미도 많으며 꽤 웃겨요. 허구헌날 튜브에 담긴 물감 탄 물만 끓이고 있는 유니버설 영화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커티스는 진짜 과학자처럼 보이는 행동도 몇 번 합니다. 그러는 동안 계속 자잘한 인간들의 음모가 밝혀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진짜 여기에 보다 복잡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게 됩니다. 


결말은 다시 호러가 됩니다. 지금까지 흔적만 흘리던 괴물이 다시 등장하고 액션이 펼쳐집니다. 이 부분 역시 분위기 좋고 속도도 좋습니다. 그와 함께 커티스가 따르던 추리 파트도 어느 정도 해결을 봐요. 하지만 호러만큼 잘 마무리 되지는 않았지요. 커티스는 모든 사건이 과학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이야기는 여전히 늑대인간 이야기이고 관객들이 본 건 여전히 초자연현상이거든요. 이 흐릿한 태도는 어느 관점에서 봐도 장점은 못 되지요.


그러나 드러난 단점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단점은 아니고, 그 단점들을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죽지 않는 괴물]은 여전히 흥겨운 장르 영화입니다. 온갖 재료들이 조금씩 섞여 맛깔스럽게 만들어진 잡탕 요리죠. 개봉 당시엔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잊혀졌지만 조금 더 감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9/17)



기타등등

IMDb 보드의 회원들이 남긴 글들을 읽어보니, 원작은 조금 더 심각하고 초자연현상에도 더 충실한 모양입니다. 그게 더 이치에 맞겠죠. 


감독: John Brahm, 출연: James Ellison, Heather Angel, John Howard, Bramwell Fletcher, Heather Thatcher, Aubrey Mather, Halliwell Hobbes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548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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