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보면서 관객들이 가장 불만이었던 건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인 잭 스패로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였죠. 엘리자베스와 윌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봤던 건 잭 스패로우였으니 캐릭터 배분의 불만이 싹틀 수밖에. 그러다보니 우리의 주인공들을 밀어내고 잭 스패로우가 주인공인 [캐리비안의 해적] 4편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공적이었나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분명 잭 스패로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의 비중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에요. 그는 딱 이전 [캐리비안의 해적] 비중으로만 나옵니다. 이 영화를 끌어가는 건 여전히 남의 일이에요. 생명의 샘을 찾아 떠나는 악명높은 검은 수염과 잭 스패로우와 잠시 놀았던 스페인 여인 앙헬리카가 드라마의 주축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엘리자베스와 윌처럼 주인공의 친근함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이야기는 방황하게 되는 거죠.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엘리자베스와 윌은 썩 좋은 주인공이었단 말입니다.


과연 잭 스패로우가 좋은 '주인공 캐릭터'인지도 확신이 안 섭니다. 스패로우는 본 재료보다는 양념에 가깝고, 메인 코스보다는 디저트에 가깝죠. 캐릭터가 살고 영화가 살려면 그보다 덜 재미있고 덜 괴상한 다른 무언가 옆에 있어야 해요. 물론 영리한 작가가 스패로우만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조류]의 각본은 그런 이야기와 거리가 멀어요.


2. 

[낯선 조류]라는 제목은 카리브해의 해적들이 주인공인 팀 파워스의 판타지 소설과 같죠. 이미 서점에서는 파워스의 소설에 영화 사진 커버를 입혀 원작소설이라면서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까지는 아니에요. 영화 크레딧에도 그냥 'suggested by' 라고만 나와 있고요. 영화는 소설에서 검은 수염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해적두목 에드워드 티치가 부두 마법사이고, 주인공들이 폰세 데 레온의 '젊음의 샘'을 찾으러 간다는 것 정도만을 가져왔어요. 하긴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대로는 끼워맞추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리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주인공들이 별로 없어요. 물론 관객들은 잭 스패로우를 따르겠지만 그에겐 이야기를 이끌만한 대단한 동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젊음의 샘'에 대한 그의 갈망도 오락가락해요. 앙헬리카와의 러브라인도 끝없이 이어지는 전희와 같아서 그 자체로 동기가 되지는 못하고요. 이러다 보니 스토리는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바꾸어가며 자동진행되게 됩니다. 몇몇 서브 플롯은 무의미하다고 느껴져요. 예를 들어 인어와 선교사의 [스플래시] 식 러브스토리는 독립된 영화라면 받아들였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꾸 방해가 되더군요. 주 액션이 진행되는 동안 스토리와 아무 상관없는 인어가 자꾸 걱정된다면 문제죠.


전반부의 지루함을 커버하는 영화 후반의 액션 대부분이 육지에서 진행되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잭 스패로우와 '청춘의 샘'을 하나로 묶는 건 타당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캐리비안의 해적]보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특히 [최후의 성전]에 더 가깝더군요.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액션을 살짝 배반한달까. 물론 해적들이라고 늘 물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저번 3부작의 클라이맥스는 대부분 해적영화스럽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에는 그 '해적'스러움이 부족해요.


앞으로 영화는 계속 나오겠죠. 그리고 개선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잭 스패로우는 여전히 잭 스패로우이고 그는 어느 영화에 들어가도 재미있죠. 단지 [낯선 조류]는 그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아낸 영화는 아닙니다. 뭔가 다른 길이 있겠죠.


3. 

이 영화를 왜 굳이 3D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3D 효과가 나는 장면도 별로 없습니다. 안경은 순전히 자막을 이중으로 겹치지 않기 위해 쓰는 거죠. 영화의 스펙터클 대부분도 큰 화면이 입체효과보다 중요한 종류입니다. 어차피 멀리서 침몰하는 범선을 구경할 때 여러분이 받는 인상은 입체효과와 별 상관 없습니다. 순전히 불필요한 유행 때문에 영화 만드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모두 쓸데 없는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1/05/19)


★★☆


기타등등

1. 주디 덴치의 카메오를 찾아보세요.


2. 아, 물론 엔드 크레딧 끝에 쿠키가 있습니다.

 

감독: Rob Marshall, 출연: Johnny Depp, Penélope Cruz, Geoffrey Rush, Ian McShane, Kevin McNally, Sam Claflin, Astrid Berges-Frisbey, Stephen Graham


IMDb http://www.imdb.com/title/tt129865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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