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 버디 Hop (2011)

[바니 버디]는 비종교적인 부활절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기독교 언급이 전혀 없어요. 실제로 영화 속 토끼들은 4천년 전부터 달걀을 나누어준 모양이더군요. 그렇다면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죠.

영화의 주인공은 드러머가 되고 싶어하는 부활절 토끼 E.B.입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부활절 토끼 자리를 물려받기 직전에 할리우드로 가출을 하죠. 당연히 침소를 제공해줄 거라 생각했던 휴 해프너의 저택에서 쫓겨난 그는 길거리를 방황하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동생 직장 상사의 집을 맡아주려 가던 백수 청년 프레드의 차에 치일 뻔합니다. 그 뒤로 E.B.와 프레드는 콤비로 엮이게 되고 코미디가 시작되지요.

영화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부활절 토끼를 산타 클로스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영화의 토끼들은 이스터 섬 지하에 있는 비밀 본부에서 19세기 상류층 영국인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요. 토끼들은 관리직이거나 배달업무를 맡고 있고, 병아리들은 (닭은 없고 오로지 병아리들뿐입니다) 생산직에 종사합니다. 섬엔 비밀 지하통로가 있어서 컴퓨터로 명령을 내리고 점프를 하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데려다 주죠. 하지만 정작 부활절 때는 병아리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다니는 모양입니다.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전 토끼와 병아리들의 관계가 무척 걸렸습니다. 그래서 병아리들의 리더 카를로스가, 부활절 임무 따위엔 관심도 없는 이비를 대신해서 부활절 토끼가 되려고 했을 때, 전 그냥 "왜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왕좌를 찬탈하는 악당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것도 포시한 영국 억양을 구사하는 상류층 주인들을 밀어내려는 스페인계 노동자 악당인 거죠.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이스터 섬의 배경이 자꾸 걸려요. 이 영화에서 이스터 섬은 산타 클로스의 북극과 같은 곳입니다. 이름만 보면 어울릴 것도 같죠. 하지만 북극과는 달리 이스터 섬은 문화적으로 백지 상태가 아니잖습니까. 이미 그곳에는 원주민과 거석 문명이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거석은 토끼들의 비밀 본부의 출입구에 불과하고 원주민들은 그냥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를 결백하다고 할 수는 없죠.

내용은 심심합니다. 부활절 토끼가 나오는 걸 제외하면 그냥 크리스마스 이야기거든요. 그것도 밋밋한 크리스마스요. 모든 게 조금씩 다운그레이드되어 있어요. 산타 클로스의 선물을 부활절 달걀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죠. 당연히 부활절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E.B.와 프레드의 관계도 흔한 코미디 공식에서 가져와서 새로울 것도 없고, 그 익숙한 공식을 살릴만한 무언가가 부족해요. 단지 멀쩡한 청년이 부활절 토끼가 되겠다고 난리를 치는 게 좀 신기하긴 합니다만, 프레드의 그런 노력도 보다 절실한 카를로스의 쿠데타에 가려지고 맙니다.

보기는 좋습니다. 털이 복슬복슬한 토끼들은 귀엽고, 이스터 섬의 비밀 기지도 아기자기하고 예뻐요. 각본이 별다른 역할을 주지 않아서 그렇지 토끼 특공대인 핑크 베레도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들이었고요. 러셀 브랜드와 제임스 마스든도 제대로 캐스팅된 배우들이고. 단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려면 예쁜 재료와 잘 캐스팅된 배우 이상이 필요한 거죠. (1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