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위크 Dragonwyck (1946)

2010.09.06 00:00

DJUNA 조회 수:13239


조셉 L. 맨키위츠의 [드래곤위크]가 나온 건 1946년. 아직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가 영화관객들의 기억에 생생할 때입니다. 20세기 폭스사가 아냐 시튼의 원작 소설을 샀던 것도 그들만의 [레베카]를 만들기 위해서였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심지어 시튼의 소설도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레베카]의 독자들을 겨냥해 광고를 했으니, 말 다 했죠. 다들 정말 대프니 뒤 모리에가 다시 불을 당긴 모던 고딕 로맨스에 푹 빠져 있었던 겁니다. 이해가 가요. 매력적인 장르니까. 하지만 은근히 성공작은 많지 않죠. 호사스러운 저택에 비밀을 감춘 컴컴한 남자와 순진한 여자 주인공을 가두고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 봤자 얼마나 많겠습니까.


[드래곤위크]에도 이 세 가지는 모두 나옵니다. 순진무구한 주인공은 미란다로, 코네티컷의 신앙심 깊은 농부 집안 출신의 아가씨입니다. 컴컴한 남자는 그녀의 먼 친척인 니콜라스로, 네덜란드 계 명문가 출신의 대지주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니콜라스는 미란다네 집에 편지를 보내 딸 카트린의 컴패니언을 맡을 딸을 보내달라고 하고, 시골 생활에 진력이 난 미란다는 니콜라스가 살고 있는 드래곤위크 저택으로 가죠. 당연한 일이지만 니콜라스에게는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은 다소 컴컴하며 폭력적입니다. 같이 살면 안 되는 남자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여자주인공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쓴답니까. 그는 유부남이지만, 아내 조핸나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관객들은 그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으니, 방해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드래곤위크]가 [레베카]에서 차별화되는 것은 역사적 요소입니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844년입니다. 반지대폭동 Anti-Rent War이 한참이던 때죠. 딱 니콜라스와 같은 파트룬 patroon 밑에서 농노나 다름 없는 삶을 살던 농부들이 반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켰던 겁니다. 결국 1846년에 토지보유권 제도가 철폐되고 파트룬의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영화의 결말도 그와 시기를 같이 하고요. 


영화는 여전히 고딕 로맨스이기 때문에, 이런 구체적인 역사는 드문드문 언급될 뿐,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은 여전히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니콜라스라는 캐릭터부터 역사를 떼어놓으면 완성되지 못합니다. 그는 단순히 비밀을 간직한 컴컴한 인물이 아니라, 멸망해 가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저지르는 개인적인 범죄와 죄악 역시 죽어가는 집단의 부패과정이라 할 수 있지요. 그가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적인 인물이었다면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강박증과 공포를 비교적 쉽게 벗어던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끝까지 그러지 못합니다. 


한 없이 불쾌하고 위험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니콜라스에게는 맥심 드 윈터가 가지지 못한 장엄한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니콜라스의 매력인지, 그를 연기한 빈센트 프라이스의 매력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 둘 다겠죠. 하여간 프라이스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평생을 걸쳐 했던 고딕적 호러 연기의 프로토 타입을 완성합니다. 괴물의 탄생인 거죠. 그에 비하면 진 티어니가 연기하는 미란다는 살짝 기가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그 사람이 속해있는 근본주의자 기독교 사회에 거부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매력적이 되기엔 지나치게 단순하고 투박합니다. 종종 내뱉은 종교적인 대사들은 따분하고요.


영화도 미란다처럼 투박한 편입니다. 20세기 폭스사의 노련한 인재들이 완벽한 기술적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거친 느낌이에요. 원작부터 원래 그런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원래 감독인 에른스트 루비치에서부터 맨키위츠로 작품이 넘어가면서 인수인계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죠. 적어도 이 영화로 얼떨결에 감독 데뷔를 한 맨키위츠가 만족스럽게 작품을 통제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0/09/06)



기타등등

이 영화는 [폭스 호러 클래식]의 두 번째 박스 세트에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수록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전문가들도 영화의 호러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섭긴 [레베카]가 더 무섭죠.


감독: Joseph L. Mankiewicz, 출연: Gene Tierney, Walter Huston, Vincent Price, Glenn Langan, Anne Revere, Spring Byington, Connie Marshall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84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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