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2010)

2010.11.05 00:27

DJUNA 조회 수:19486


1.
눈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주변 모든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겠지만, 그는 별다른 야심이 없습니다. 가끔 사채업자나 전당포에서 돈을 뜯으며 호텔에서 편하게 사는 게 전부죠. 이해가 가요. 야심이라는 것도 그냥 생기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는 그런 야심을 배울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았으니 교육도 많이 못 받았을 거고, 친구도 없고...

그러다 그는 어느 날 전당포를 털다가 막 거기 대리로 취직한 임규남이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내세울 거 하나 없는 별볼일 없는 청년이지만 그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하나 있으니, 초인 청년의 초능력이 그에게만은 먹히지 않는 겁니다. 그 결과 보통 때 같으면 은근슬쩍 넘어갔을 일이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규남은 복수를 다짐하고 초인을 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민폐의 연속입니다. 초인을 잡으려는 규남의 노력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뿐이죠. 그 자신도 범인으로 몰려 쫓기는 건 물론이고요. 그런데도 규남은 멈출 줄을 몰라요.

이 친구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죽은 사람이 자기에게 잘 대해줘서? 그렇기도 하겠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드디어 그에게 내세울 수 있는 능력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초인 역시 이 불쾌한 만남 이후 갑자기 생기가 도는데, 아무리 자기를 때려잡으려는 적수라고 해도 자길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 있는 건 철저한 고독보다는 조금 낫기 때문입니다.

[초능력자]가 그리는 대한민국 현대 젊은이들의 모습은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처절하게 외면당하는 종자들로 오로지 서로의 인정을 통해서만 존재의미를 부여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이란 그들이 빠져 있는 작은 무리에서 벗어나면 아무 쓸모가 없죠. 초인을 외로운 소수자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의 위치로 바꾸어 놓고 다시 읽어도 이야기는 그렇게 밝아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의로운 자의 노력만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해보이니까요. 물론 각본가의 빽이 있다면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만.

2.
안티 버디 영화로서, [초능력자]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재료를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재료들을 거의 모두 쓰고 있어요. 초능력 장면도 많고 폭력 장면도 많으며 대결 장면도 많습니다. 이 정도면 캐릭터들의 개성도 분명하게 잡혔고요. 끝날 때까지 영화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소재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지루하지는 않은데, 아주 재미있지도 않아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환상적인 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않는 거죠. 뭔가 더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서 멈추어버리는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걸리는 건, 영화의 논리가 각본가의 편의를 위해 은근슬쩍 축소되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경찰의 행동을 한 번 볼까요? 수상쩍은 상황에서 한 명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경찰은 당연히 현장을 통제하고 CCTV 테이프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게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경찰은 그 중 어느 것도 안 합니다. 이건 무능력과는 상관이 없어요. 그냥 이상한 거죠. 그리고 이런 장면들이 계속 나옵니다.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방법도 지나치게 수월해보입니다. 초인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난 다른 사람들과 달라' 투정은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며 솔직히 배부른 소리처럼 들립니다. 중반 이후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더군요.

3.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건 캐스팅입니다. 강동원, 고수의 캐스팅은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둘은 모두 어울려요. 강동원의 육식조류와 같은 외모와 어눌한 태도는 영화가 그리는 초인 역에 딱입니다. 고수의 심심할 정도로 멀끔한 이미지도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를 잘 만나 제대로 살아났습니다. 그 멀끔한 이미지가 오히려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거죠. 둘은 죽도 잘 맞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배우는 규남의 친구로 나오는 에네스 카야와 아부다드입니다. 일단 이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한국어를 잘 한다는 점을 밝혀야겠군요. 하지만 그걸 떠나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상당해서 그냥 화면에 나오기만 해도 주연 배우들을 마구 눌러버립니다. 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대본을 주어도 되었을 걸 그랬어요. 지금은 좋은 가능성을 그냥 소모품으로 날려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10/11/05)

★★☆

기타등등
에필로그는 사족처럼 보였습니다. 그냥 암시만 해도 충분했을 거고, 같은 방향으로 가더라도 조금 다른 재료를 쓸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소망성취처럼 보이더군요.


감독: 김민석, 출연: 고수, 강동원, 아부다드, 에네스 카야, 변희봉, 정은채, 다른 제목: Psychic

IMDb http://www.imdb.com/title/tt190089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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