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의 악당 (2010)

2010.11.16 11:01

DJUNA 조회 수:17077


남편이 죽은 뒤 2층을 세놓은 연주네 집에 자칭 작가라는 남자가 소설을 쓰겠다고 들어옵니다. 물론 그는 소설가 따위가 아니고 이 집에 들어올 속사정이 따로 있지요. 프롤로그에서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도, 제목이 [이층의 악당]이 아니었다고 해도, 관객들은 그의 정체를 의심했을 겁니다. [이층의 악당]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명탐정이 뜻밖의 범인을 잡다'만큼이나 원형적인 추리/멜로드라마의 공식이거든요. 전 코난 도일의 [붉은 머리 연맹]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손재곤은 이 익숙한 마당 안에서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처럼 설정이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과장할 생각 같은 건 없어요.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배우들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주어 풀어놓고 있지요. 이제 장르나 매체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고 시선을 끌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층의 악당]이 매너리즘에 빠진 심심한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반대입니다. 손재곤이 편안해졌다는 건 자신의 개성 안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개성은 신파와 폭력적 난투극의 기묘한 조합인 한국 주류 장르 코미디에서는 상당히 벗어나 있지요. 굳이 스스로를 드러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차별성은 여전히 유지됩니다. 


[이층의 악당]을 보고 있으면 캐릭터를 짜는 그의 테크닉이 점점 물이 올랐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모두 공식 안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생생하기 그지 없어요. 제 생각에 이 결과는 그의 정직함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캐릭터가 놓인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여기에 불필요한 타협을 가하지 않으며 그 상태에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갑니다. 사춘기가 되어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연주의 딸 성아를 보죠. 보통 한국 코미디라면 이 아가씨에게 신데렐라의 기회를 주고 모녀간의 눈물찍 신파를 넣을 것입니다. 하지만 손재곤은 안 그럽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보다도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존중하고 있지요.

플롯을 짜는 그의 기술도 점점 더 좋아집니다. 그는 불필요한 과장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덤덤한 태도로 주어진 재료의 가능성을 끝까지 쥐어짭니다. 위층 소설가 아저씨와 연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식을 보세요. 얼핏 보면 예의바르게 19세기 웰메이드 플레이의 전통을 따르는 것 같긴 하지만, 활용되는 가능성의 풍요로움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인기 있는 창고 시퀀스처럼 그 가능성이 빵빵 터지는 부분이 나오는 거죠.


캐스팅 역시 근사하게 잡혔습니다. 한석규와 김혜수는 오래간만에 적역을 맡았습니다. 손재곤은 한석규의 기름진 느끼함과 김혜수의 신경질적인 날카로움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여 둘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선을 찾아냅니다. 배우간의 호흡이 굉장히 좋아서 둘이 만나기만 해도 각본 없이 그냥 술술 굴러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연배우나 카메오의 활용도 좋습니다. 몇 분 나오고 마는 유키스의 동호만 해도 이미지의 뽕을 뽑고 있죠. 전 성아 역의 지우도 좋았습니다. 최근들어 그처럼 완벽하게 사춘기의 히스테리가 체화된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러닝타임은 의도보다 조금 길고, 오순경처럼 가능성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캐릭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힘이 모자라요. 지금까지 쌓아놓은 긴장감이 터지는 대신 피식하고 김이 빠져나가는 것 같달까. 마찬가지로 결말도 조금 쉽게 간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니 그렇게 끝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불평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낸 결말 역시 손재곤스럽고 전 그 느낌이 좋아요. (10/11/16)



기타등등

왜들 그렇게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들 하는지. 영화 속에 나오는 단독주택은 아늑하고 좋지 않던가요.


감독: 손재곤, 출연: 한석규, 김혜수, 지우, 이용녀, 이장우, 엄기준, 박혁권, 동호, 다른 제목: Villain on the Second Floor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Villain_on_the_Second_Floor.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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