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는 C.S. 루이스의 원작 소설 시리즈 중 제가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던 작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류의 항해 모험담이고, 새로 등장한 말썽꾸러기 소년 유스터스 캐릭터는 이야기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줍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는 아슬란이 거의 나오지 않아요. 그것만 해도 고맙죠.

영화의 대부분은 새벽 출정호라는 나니아의 범선에서 벌어집니다. 숙모네 집에 머물고 있던 루시와 에드먼드는 사촌 유스터스와 함께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나니아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들은 이제 왕이 된 캐스피언을 만나고, 실종된 일곱 명의 영주를 찾는 모험에 나섭니다. 그 뒤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중 일부는 원작에 충실하고, 일부는 아닙니다.

영화의 장점은 네 발 달린 기계장치 신인 아슬란의 비중이 비교적 적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편리하게 풀린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고난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의지는 선명하고, 종교적 상징은 가볍습니다. 영화는 유스터스의 이야기를 그리는 동안, 현대식 교육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편견에 찬 야유임이 분명했던 루이스의 비틀린 관점을 많이 덜어냈는데, 관객으로서 그냥 고맙습니다. 막판에 쓸데없이 나오는 아슬란의 등장을 지워버리고 캐릭터의 자성에 집중했다면, 결말은 거의 감동적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전 영화의 후반에 등장하는 바다뱀도 좋았습니다. 원작의 팬이라면 이 괴물의 불필요한 확장에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바다뱀과 새벽 출정호의 대결 장면에는 옛날 레이 해리하우젠 영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거칠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바다뱀은 요새 나오는 다른 괴물들과는 질감부터 다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안경을 쓰고 봐야 하는 3D라는 것입니다. 후반작업으로 심은 3D 효과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화면은 화가 날 정도로 어둡습니다. 다행히도 이 단점은 쉽게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냥 2D를 선택하면 되는 겁니다. (10/12/02)

★★★

기타등등
리피치프 역의 성우가 바뀌었습니다. 에디 이자드의 뒤를 이어 사이먼 펙이 말하는 쥐 역을 연기합니다. 네, 이 영화에는 말하는 쥐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쥐가 말을 한다! 쥐가 말을 한다!") 유난떨긴. 그게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감독: Michael Apted, 출연: Georgie Henley, Skandar Keynes, Ben Barnes, Will Poulter, Gary Sweet, Tilda Swinton, Anna Popplewell, William Moseley, Simon Pegg, Liam Nee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9809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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