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Shanghai (2010)

2011.01.22 11:22

DJUNA 조회 수:16587


1941년 상하이. 친 나치 언론인으로 위장한 해군첩보부 소속의 폴 솜즈는 베를린을 떠나 상하이로 옵니다. 거기서 마주친 건 동료 코너의 시체. 분명 코너는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살해당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정보는 뭘까요. 관객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1941년 말인데 아직도 미국인들이 상하이에서 우아한 밤문화를 즐기고 있다면 앞으로 닥칠 일이 무엇인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미카엘 하프스트룀의 [상하이]는 필름 느와르의 외피를 입은 첩보물입니다. 전통적인 필름 느와르의 규칙을 숫기없는 모범생처럼 따라가고 있지요. 맨날 여기저기에서 구박당하고 얻어맞는 주인공의 나레이션, 배배꼬인 살인사건, 신비스러운 팜므파탈, 거대한 조직범죄단의 두목... 단지 이것들이 전세계 역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펼쳐지는 겁니다. 


이야기는 허무주의로 푹 젖어 있습니다. 필름 느와르 장르의 영향이겠죠. 솜즈는 게으른 남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역사가 느리고 무겁게 움직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폭 두목인 앤소니, 남편을 방패로 쓰며 지하운동을 하는 애나, 아마도 코너의 살인사건과 연결되어 있을 일본 첩보부 수장 다나카 역시 자신의 한계 안에 갇혀 있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어딜 봐도 승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 허무주의가 각본 자체의 무기력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 작품은 1941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던 제작자 마이클 메다보이의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각본가 호세인 아미니가 메다보이의 열정을 공유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그리는 상하이는 그냥 막연합니다. 메다보이가 주었을 기본 스토리 안에 종속되어 있을 뿐, 자기만의 생명력이 없어요.


그건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력이 전혀 없는 인물들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남의 꿈속을 헤매는 꿈의 파편들처럼 보이는 건 필름 느와르의 장르를 가지고 설명해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애나, 안소니, 다나카는 종종 동양인으로 위장한 서구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영화의 허무한 결말에 도달했을 때, 관객들이 그 허무함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건, 주인공들이 영화 중반에 이미 에너지를 잃어버려 드라마의 낙차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상하이]에는 우리가 고풍스러운 할리우드 시대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화려한 환상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지탱하는 것은 애나를 연기한 공리의 존재감입니다. 주윤발과 와타나베 켄에게도 빛날 수 있는 몇 초의 순간들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정작 주연 배우 존 큐삭은 영화 내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1/01/22)



기타등등

국내 수입사에서는 이 영화를 엄청난 전쟁첩보물로 홍보하고 있는데, 이래봤자 관객들을 실망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감독: Mikael Håfström, 출연: John Cusack, Li Gong, Yun-Fat Chow, David Morse, Ken Watanabe, Franka Potente, Jeffrey Dean Morgan, Hugh Bonneville, Benedict Wong, Rinko Kikuchi


IMDb http://www.imdb.com/title/tt109263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7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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