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2011)

2011.02.01 10:13

DJUNA 조회 수:11912


이규만의 [아이들...]의 소재는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아무런 사전 정보 없는 관객들은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화하려고?"라고 생각하겠죠.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해결 사건이고 사건을 끌어갈 분명한 주인공도 보이지 않는데. 이 기획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이미 미해결사건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두 편의 한국영화가 있다는 거겠죠. 


전 원작이라는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에 대한 검색하면서 대충 이 영화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김가원은 몇 년 전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한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했었죠. 아이들은 처음부터 산에 가지 않았고 아이들 부모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당해 집에 암매장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 소년의 집을 파헤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결말만 이야기한다면 그건 잘못된 추리였습니다. 그럴싸하게만 보였을 뿐이죠. 김가원은 결국 명예훼손으로 벌금을 물고 직장인 카이스트를 떠나야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써서 책을 냈는데, 그게 이 영화의 원작이지요.


이건 매혹적인 아이디어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이 생깁니다. 실패담이지만 추리물의 형식도 만들어지지요. 영화의 소재도 신선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결국 만든 사람 스스로가 그 이론의 포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뒤, 막판에 그 그럴싸해보였던 추론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상누각이었는지 보여주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아이들...]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이 기둥 줄거리에 집중했을 때입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심리학자 황우혁의 추론에는 오싹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럴싸하고 무시무시하잖아, 왜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끌어내는 힘. 음모론의 씨앗이 되기엔 완벽한 아이디어죠. 그리고 영화는 그 감정을 온전하게 스크린 위에 옮깁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의 전체를 담아야겠다는 야심에 포기한 것이죠. 김가원의 이야기는 이 전체 사건의 비교적 작은 부분,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해프닝에 불과한데, 영화는 거기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사건 전체를 커버해야 해요. 심지어 영화는 따로 범인까지 만들어놓습니다. 프로파일러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이 인물이 갑자기 주인공인 강지승 PD의 인생에 들어오는 장면은 그냥 생뚱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모양이 좀 이상해집니다. 여전히 황우혁과 강지승의 음모론이 영화의 기둥이라는 건 맞는데, 영화는 이 기둥 이야기를 살리는 대신 계속 관객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있단 말이죠. 좋은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영화인데도 이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묶어놓으면 계속 감정 흐름이 어긋나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클라이맥스여야 할 피해자 어머니의 고백 장면도 이렇게 산만한 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었던 작품입니다. 적어도 좋은 영화의 재료는 갖고 있었고 그것들은 여전히 영화 곳곳에 보여요. 하지만 지나친 야심, 소재에 대한 부담감, 실존인물에 대한 예의와 책임감이 엇갈리는 동안, 영화는 에너지와 초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들을 온전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마지막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11/02/01)


★★☆


기타등등

관련 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건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명까지 바꾸는 건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 이규만, 출연: 박용우, 류승룡, 성동일, 성지루, 김여진, 박병은, 김구택, 이상희, 서영화, 이의수, 주진모, 박미현, 조덕제, 남상백, 정계순, 임지규, 다른 제목: Children...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Children_p__p__p_.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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