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다 (2011)

2011.04.07 09:43

DJUNA 조회 수:11917


제목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윤현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2008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마켓에서 추천작으로 뽑혔을 때의 제목은 [파괴된 남자]였습니다. 카피 제목이죠. 그런데 비슷한 카피 제목을 썼던 [파괴된 사나이]가 먼저 나오면서 제목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대신 선택한 제목은 [놈의 역습]. 하지만 누가 봐도 이상한 이 제목이 그대로 살아남는 건 거의 불가능했죠. 결국 선정된 제목은 보다 대중친화적인 [나는 아빠다]였다는데, 이건 [나는 가수다] 이전에 나온 제목으로, 패러디를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전 정확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에요.


제목에 아빠가 들어가니 당연히 아빠가 나오겠죠. 여기서 '아빠'는 종식이라는 비리경찰입니다. 그에게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민지라는 어린 딸이 있어요. 딸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그는 뭐든지 한다는 게 설정인데,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종식은 그냥 더럽고 불쾌한 인간입니다.  아픈 딸이 없어도 증거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고 뇌물 받으며 살아갈 놈이죠. 그런데 이런 녀석이 딸을 알리바이로 삼으며 "나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떠벌이고 있으니, 영화 보는 내내 그 치사뻔뻔스러운 낯짝을 걷어차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다른 아빠가 나옵니다. 소위 '순수한 영혼'을 가진 마술사 상만이죠. 그는 어쩌다 살인현장에 있다가 뇌물을 받은 종식에 의해 체포되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서 2년을 썩다가 무혐의로 출소한 상만은 그 동안 어린 딸이 자살하고 아내 역시 자살을 시도하다 뇌사상태에 빠진 걸 알게 됩니다(아, 전 아이들의 죽음을 이런 식의 소도구로 이용하는 게 정말 싫습니다!) 복수를 계획하던 상만은 아내의 심장을 이식받을 사람이 종식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지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민지가 살아난다는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거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죠. 하지만 영화가 택한 길은 흥미진진함과 거리가 멉니다. 우선 캐릭터에 몰입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종식은 순수한 악당으로 봐도 옆에 있기 싫은 놈인데, 이 녀석이 주인공 행세를 합니다. 그것도 '나는 아빠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야'라고 징징거리면서요. 이런 비겁한 태도가 제목하고 어우러지니까 정말 꼴도 보기 싫어집니다. 이러니 그래도 견딜만한 상만에게 몰입하고 싶은데, 이 상만이라는 캐릭터는 현실성 없이 붕 떠있는 데다가 무능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캐릭터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이야기 자체가 붕괴수준이에요.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이고 별다른 방향성도 없습니다. '무식하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각본가 탓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 오리지널 각본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서 감독들이 훨씬 '독한 각본'을 대중적으로 고쳤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바뀐 결말에 대해 들어보니 오리지널 각본 쪽이 조금 나은 것 같군요. 실제로 더 나았을 수도 있어요.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극도로 저열하고 비겁한 타협이니까요. 영화가 '아빠 알리바이'를 포기하고 종식이 바닥을 치는 쓰레기라는 걸 솔직하게 인정했다면 저도 끝까지 견뎌낼 수는 있었을 테니까요. 정말이지 '아빠'라는 단어를 이처럼 혐오스럽게 쓴 영화는 처음 봐요. (11/04/07)


★☆


기타등등

김새론의 비중은 거의 가구 수준입니다. 대사는 거의 없고 등장 시간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내지요. 하여간 [나는 아빠다]는 김새론의 이름과 엮여 종종 언급되는 '딸바보' 어쩌구 넌센스의 바닥을 치는 작품입니다. 제발 다음엔 이런 영화는 찍지 맙시다.

 

감독: 전만배, 이세영, 출연: 김승우, 손병호, 임하룡, 최정윤, 김새론, 다른 제목: I Am a Da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I_Am_a_Dad.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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