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Sien nui yau wan (2011)

우리가 아는 [천녀유혼]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수록된 [섭소천]이라는 단편이 원작이고, 이 작품은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적 있죠.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리지널 [천녀유혼]이라고 생각하는 건 왕조현과 장국영이 나왔던 정소동 작품. 이번에 엽위신이 만든 리메이크판 [천녀유혼]이 원작으로 삼은 작품도 포송령의 소설이 아니라 정소동의 영화입니다.

원작을 그대로 만들면 리메이크의 이유가 없어지니까, 영화는 내용을 조금 바꿉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연적하의 비중이 커진 거죠. 이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은 영채신이 아니라 연적하입니다. 그는 왕년에 섭소천을 사랑했는데, 퇴마사와 요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 어쩔 수 없이 섭소천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나무 요괴 할머니를 봉인한 뒤, 흑산 주변에서 외롭게 퇴마사질을 하고 있었던 거랍니다. 그러다 가뭄이 든 마을에 찾아온 하급관리 영채신이 흑산으로 올라가고 섭소천을 만나고... 음...

문제점이 보이지 않나요? 정소동의 [천녀유혼]은 단순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포송령의 원작보다 더 단순했죠. 그리고 그 단순함은 영화의 내용이나 배경과 맞았습니다. 영화가 그리는 설화풍의 배경에서 이야기가 살려면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안 되지요. [천녀유혼]은 현실세계의 로맨스와는 차별화 되는 순수함과 단순함 때문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엽위신의 [천녀유혼]에서는 이 단순함을 고의로 파괴해버립니다. 이제 섭소천은 연적하와 영채신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빠지고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상실증이 동원됩니다. 마지막 액션엔 연적하의 동료가 등장해 연적하와 대립하고, 흑산 밑의 마을 사람들은 병에 걸리고, 그러는 동안 섭소천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위기에 빠지거나 기절하거나 부상당하거나 운반되는데, 러닝타임은 겨우 98분입니다. 이렇게 분주하다보니 주인공들은 연애할 시간도 없고, 액션할 시간도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 등장시간을 챙길 여유도 없어요.

캐릭터들은 당연히 손해를 봅니다. 정소동의 영화를 보고 당연히 섭소천과 영채신이 주인공이려니, 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이상할 정도로 조금 나와요. 문제는 이런 축소 과정 중 매력도 날려버렸다는 겁니다. 그래도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주인공 역할이라도 하는 섭소천과는 달리 영채신은 그냥 바보 조연에 가깝습니다. 매력은 약에 쓰려고 찾아봐도 없는 민폐죠. 비중이 늘어난 연적하가 과연 이득을 본 캐릭터인지도 확신이 안 섭니다. 어떤 때는 상상 속에 설명을 묻고 빈 자리를 보여주는 게 더 좋죠. 이 영화의 연적하는 보여주는 게 지나치게 많습니다.

엽위신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모두 살리려다가 대부분 놓칩니다. 종종 감독이 무엇을 던지고 무엇을 받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게 보여요. 편집은 거칠고 CG로 범벅이 된 특수효과는 나쁩니다. 그래도 87년에 나온 정소동 영화의 특수효과보다는 낫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실 텐데, 안 그렇습니다. 80년대 홍콩 영화의 아날로그 특수효과엔 고유의 매력이 있죠. 이 영화의 CG엔 그게 없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나빠요. 가장 나쁜 부분은 액션과 로맨스, 코미디의 배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입니다. 이건 꼭 감독의 무능력 때문은 아닐 겁니다. 엽위신은 지금까지 준수한 장르 영화들을 만들어 왔으니까요. 단지 이런 식의 판타지 무협 액션물은 그의 특기가 아닌 것 같아요. (1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