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성운 Tumannost Andromedy (1967)

2011.06.05 15:20

DJUNA 조회 수:5479


이반 예프레모프의 [안드로메다 성운]은 가장 유명한 러시아 SF 소설로, 제 또래 장르 독자들은 아직도 어린 시절 아이디어 회관 축약판을 통해 이 책을 접했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요. 어렸을 때 우연히 이 작품의 영화판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늘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인터넷을 통해 이 영화를 접했어요(이 영화의 판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공짜라니 공짜려니 할뿐이죠.) 이미 그 동안 사전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각오는 했는데, 그래도 많이 별로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대가 이렇게 깨지면 슬프지요.


예프레모프의 소설의 배경은 지구가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되고 그레이트 서클이라는 외계 은하 통신망과 접촉하게 된 먼 미래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초광속 비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우주선 탄트라는 제목인 안드로메다 은하 근처에도 가지 못하죠. 소설의 이야기는 상당히 광대하다고 들었는데, 아이디어 회관의 축약본은 주로 철의 별의 중력이 잡힌 탄트라호의 모험에 집중하고 있고 영화도 역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영화는 2부작으로 계획되었지만 1편의 평가가 워낙 나빠서 어정쩡하게 주저앉았다고 하더군요.


영화의 이야기는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그레이트 서클과 접촉하는 과학자들이 열심히 철학과 과학과 로맨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철의 별에서는 외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우주선과 식인 괴물들과 좌초한 지구 우주선을 발견한 우주비행사들이 연애하고 싸우고 지식을 쌓고 탈출구를 모색합니다. 절반으로 쪼개졌다고 클리프행어를 걱정하지는 마시길. 끝에 가면 탄트라는 간신히 철의 별에서 빠져나오긴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점은 상상력의 빈곤입니다. 하긴 디스토피아와는 달리 유토피아는 상상하기 쉽지 않죠. 유토피아의 세계는 이미 우리가 모르는 해결책을 알아낸 곳일 텐데, 우린 그 해결책이 뭔지 모르잖습니까. 영화는 어설프게 고대 그리스 시대를 흉내낸 옷을 입은 운동선수처럼 생긴 사람들이 흑해 어딘가에 있을 법한 피서지스러운 야외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예프레모프의 유토피아라고 내놓고 있는데, 솔직히 전 이게 지루하면서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상상력의 빈곤은 그레이트 서클에서 그 귀한 에너지를 써가면서 보내온 영상 메시지에도 드러납니다. 암만 봐도 그건 몸매 좋은 지구인 여성 댄서가 춤추는 걸 사이키델릭한 60년대 스타일로 그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탄트라 승무원들의 모험은 조금 낫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앞으로 나올 많은 영화들의 선례가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에일리언]말입니다. 외계우주선을 발견한 지구인 우주선이 낯선 행성에서 괴물들을 만나 고초를 겪는다... 많이 익숙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할리우드 SF 영화들과 비교하면 [안드로메다 성운]은 여러 모로 떨어집니다. 특히 빈약한 스펙터클은 걸려요. 먼 우주의 우주선이 무대인 영화에서 우주선이 날아가는 장면이 하나도 없고 괴물 묘사는 흐릿하기 짝이 없으니 실망스럽죠. 그렇다고 원작의 하드 SF적 측면이 제대로 반영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빈칸을 채워야 할 것은 그 모험을 겪는 탄트라의 승무원들이어야 하는데, 영화의 캐릭터 묘사는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러니 영화는 재미를 다 빼버리고 거기에 뻣뻣한 사회주의 교훈을 채워넣은 [스타 트렉]의 에피소드처럼 보입니다. 그냥 재미가 없어요. 전 어렸을 때 아이디어 회관의 축약판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훨씬 재미있는 영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도 더 멋있었지요.) 아쉬워라. 60년대의 소련은 예프레모프의 소설이 제대로 영화화될 수 있는 그 짧은 시기에 속해있었는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아슬아슬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거예요. (11/06/05)


★★


기타등등

1. 원작의 영역판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영역판을 한국어로 번역했다고도 하던데 말이죠.


2. 제가 본 건 오리지널판보다 10분 정도 짧은 재편집본입니다. 

 

감독: Yevgeni Sherstobitov, 출연: Sergei Stolyarov, Vija Artmane, Nikolai Kryukov, Tatyana Voloshina, L. Tskhvariashvili, 다른 제목: Andromeda Nebula


IMDb http://www.imdb.com/title/tt0278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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