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자 The Conspirator (2010)

로버트 레드포드의 [음모자]는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라는 제작사의 창립작품입니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로고부터가 애국자스러운 이 회사의 목표는 미국 역사를 소재로 한 실화 영화를 만드는 거라죠. PBS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은근히 레드포드와 어울리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그가 만든 영화들은 다 조금씩 PBS스러웠어요. 그 중 [로스트 라이언즈]는 좀 심했었죠.

다행히도 [음모자]는 [로스트 라이언즈]와는 달리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와 그에 속해 있는 인상적인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메리 서랏이라는 여자의 재판 과정이에요. 서랏은 존 윌크스 부스와 함께 링컨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아들 존 서랏이 부스와 함께 뭔가 음모를 꾸몄던 건 분명했지만 평범한 하숙집 주인이었던 이 남부 출신의 중년부인이 정말 적극적으로 암살음모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죠. 하지만 모두가 링컨 암살의 보복을 요구하고 있었던 당시 상황은 메리 서랏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프레더릭 에이컨이라는 변호사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교였던 그는 처음엔 메리 서랏에 대해 거부감을 품고 있었죠. 하지만 메리 서랏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그는 이 재판과정이 정치적인 희생자를 만들기 위한 마녀사냥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지요. 일단 민간인인 피고를 군사재판에 세우는 것부터 잘못된 게 아닙니까. 증거는 빈약하고, 피고측 증인은 협박에 의해 증언을 바꾸고, 사방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법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건 그냥 잘못된 재판인 겁니다.

영화는 메리 서랏을 정말로 무죄를 만들어 멜로드라마를 연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드포드와 각본가 제임스 D. 솔로몬은 그러지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주제가 망가졌을지도 모르죠. 심지어 에이컨도 중간에 가볍게 언급하지만, 메리 서랏의 무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로 중요한 것은 절차인 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재판이 편견에 치우지지 않고 올바른 절차를 거쳐 진행된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기반이 망가진다면 우리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를 받겠습니까.

물론 메리 서랏의 재판은 현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 관객들은 9/11 이후 미국에서 일어났단 일련의 조치들과 서랏의 재판을 비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에겐 더 노골적이고 추한 예가 줄줄이 나오고 있죠. [음모자]는 여러 면에서 적절한 영화입니다. 사람들 끌고 가서 한 번 보여준 다음 여기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죠. 레드포드가 원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을 거고.

영화는 당연히 교과서 같습니다. 레드포드는 영화적 스타일로 유명한 감독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 무개성적이고 건전한 영화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결과가 이미 나와 있고, 주제가 교훈적이라고 해도, 누명을 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며 가망없는 전쟁을 벌이는 외로운 변호사의 이야기에는 드라마의 힘과 서스펜스 모두가 들어있습니다. 정직하게만 그려도 힘은 상당하죠. 제임스 매카보이와 로빈 라이트를 포함한 배우들도 준수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는 있는 편이에요. (1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