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익스프레스 Shanghai Express (1932)

2010.08.31 00:25

DJUNA 조회 수:9595


[상하이 익스프레스]의 무대가 되는 시기는 1930년대 초의 중국. 그 중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를 연결하는 열차 안입니다. 제목부터 로맨스와 오리엔탈리즘이 줄줄 흐릅니다. 1930년대 중국이라는 시대 배경부터가 어느 정도 신화화된 공간 아닙니까? 서구인의 왜곡된 관점이라고 밀어붙이기엔 너무 로맨틱하고 매혹적이죠. 심지어 이런 시대를 그리는 로맨티시즘은 최근 중국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영화의 이야기는 친숙합니다. 기 드 모파상의 [비계덩어리]를 중국을 무대로 개작한 게 뻔한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연기하는 '상하이 릴리'는 중국 백인 사회에서 유명한 '직업여성'인데, 상하이로 가는 특급열차에서 옛 연인인 영국인 군의관 하비 박사를 만납니다. 그러다 열차는 혁명군에 의해 억류되고, 혁명군의 리더는 상하이 릴리가 남아준다면 다른 승객들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네, 말하지 않았습니까. [비계덩어리]라고. 단지 영화의 결말은 [비계덩어리]보다 더 낙천적입니다. 더 할리우드적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매력적인 로맨스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하비 박사의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클라이브 브룩에게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건 배우건 지독하게 매력이 없단 말이죠.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영화 내내 여신 포스를 발산하면 뭣합니까. 둘을 아무리 같은 프레임에 넣어도 전혀 화학반응이 느껴지지 않는 걸요. 이 영화의 로맨스는 오로지 대사의 설명으로만 존재합니다. 그 때문에 종종 뚝뚝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광채를 발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더 좋은 다른 영화에서 따와 재편집한 것처럼 보인단 말이죠.


상하이 릴리와 하비 박사의 로맨스에 집중하다보니 더 나은 다른 재료를 낭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중 가장 아까운 건 같은 객차를 쓰는 중국인 '직업여성' 후이페이와 상하이 릴리의 관계입니다. 척 봐도 하비 박사보다는 후이페이 쪽이 상하이 릴리의 상대역으로 더 적절한 걸요. 같은 공간과 같은 편견에 갇힌 비슷한 상황의 두 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보는 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비교적 짧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지만, 후이페이를 연기한 안나 메이 왕은 종종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맞먹는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캐릭터 역시 이 영화에서 가장 실속있는 인물이고요.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다소 덜컹거리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요제프 폰 스테른베르크가 할리우드의 사운드 스테이지 안에 재현한 중국이라는 공간 자체에 있습니다. 그가 만든 중국이 30년대 실제 중국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일단 이 영화의 중국인들은 모두 광동어를 쓰는 걸요. 하지만 상하이 익스프레스가 출발해 중국 땅을 밟기 시작하면, 우리는 기묘하게 현실적인 꿈의 공간 안에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짜는 아니지만 그럴싸하게 자기 완결성을 가진 영화만의 세계죠.


현대 관객들이 [상하이 익스프레스]를 30년대의 관객들이 보았던 것처럼 진지하게 볼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영화의 캠피함이 지나치죠. 그렇다고 영화가 그런 뻔뻔스러움을 바탕으로 막 나가는 것도 아니고요. 열차여행을 다룬 20세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상하이 익스프레스]도 미지의 세계로 씩씩하게 들어가서 주인공들에게 온갖 로맨틱한 모험을 안겨주지만 결국에는 종착역에 도착해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주는 안전한 금속상자들의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안에 마를레네 디트리히라는 희귀한 존재가 타고 있다는 거죠. (10/08/31)



기타등등

짜증나는 목사 캐릭터가 중간에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헤이즈 위원회 사람들이 목사 캐릭터가 나쁘게 나오는 걸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각본을 수정한 결과랍니다. 위원회 사람들은 혼혈인 창 선생이 자신의 백인 혈통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도 싫어했지만 그건 어떻게 통과했다고 해요. 아시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이 윤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 중 상당수는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편견에 불과했어요.


감독: Josef von Sternberg, 출연: Marlene Dietrich, Clive Brook, Anna May Wong, Warner Oland, Eugene Pallette, Lawrence Grant


IMDb http://www.imdb.com/title/tt002345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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