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만 본다면, 짐 자무시의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스릴러여야 합니다. 암살지령을 받은 살인청부업자가 스페인으로 가서 정체불명의 인물들과 만나 정보를 얻으며 살인대상에 접근하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스릴과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자무시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에게 스릴러란 오로지 자기만의 놀이를 하기 위한 틀에 불과합니다. 그 놀이가 뭐냐고요? 모르겠어요. 영화 전체가 리 마빈의 영혼과 접신을 시도하는 강령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몇 초 하긴 했습니다만.


놀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그 모양이 어떤 건지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자무시의 단골 배우인 이삭 드 반콜이 연기하는 살인청부업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고용인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스페인으로 가는데, 그가 거기서 하는 일은 카페에서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테이블에 성냥갑을 올려놓은 뒤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틸다 스윈튼, 존 허트, 가엘 가르시아 바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그에게 바이올린이나 분자, 슈베르트, 보헤미안, 옛날 영화들에 대해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성냥갑을 바꿔치기 합니다. 이런 걸 끝없이 반복하며 스페인을 여행하던 그는 결국 목표 대상에 접근해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자무시의 팬들은 "그래서? 그게 나쁜 거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긴 자무시는 이전에도 이런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작품들도 [리미츠 오브 컨트롤] 못지 않게 뜬구름 잡는 영화들이었지요. 그는 이번에도 그냥 늘 하던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미니멀리스트인 '오퇴르'의 작품이라고 해도 지루함은 용납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재미가 없습니다. 성공한 자무시의 영화들은 단조롭고 느려보일지는 몰라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영화를 끌어갈 생명력이 있지요. 하지만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는 오로지 자무시 영화의 형식만이 남아 있습니다. 비슷한 직업의 캐릭터가 나왔던 [고스트 독]과 비교해보시면 캐릭터와 이야기의 생명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깨어있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그냥 관성의 산물인 겁니다.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영화보다는 짐 자무시 영화 스타일을 테마로 잡은 [배니티 페어]의 패션화보에 더 잘 어울리는 기획입니다. 페이지마다 게스트 배우 한 명씩 주인공으로 삼고 모든 대사를 캡션으로 처리해 스무 페이지 안쪽의 화보를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지금처럼 지루하지는 않았겠죠. (10/08/07)



감독: Jim Jarmusch, 출연: Isaach De Bankolé, Paz de la Huerta, Tilda Swinton, Youki Kudoh, John Hurt, Gael García Bernal, Bill Murray


IMDb http://www.imdb.com/title/tt11350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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