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The Old Maid (1939)

2015.06.22 00:26

DJUNA 조회 수:3271


에드먼드 굴딩의 [노처녀]의 원작은... 일단 이디스 워튼이 1924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1935년 조이 앳킨스가 연극으로 각색했는데,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어요. 이 작품은 에른스트 루비치가 각색하려고 판권을 샀는데 그게 잘 안 풀렸고 결국 워너브라더스로 넘어가 베티 데이비스와 미리엄 홉킨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배배꼬인 애증의 굴레 속에 갇힌 세 여자 이야기입니다. 딜리아는 클렘이란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가 2년 동안 소식이 없자 다른 남자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결혼식 날에 클렘이 딜리아를 찾아오죠. 딜리아는 클렘을 막기 위해 사촌인 샬롯을 보내는데, 샬롯 역시 클렘을 사랑하고 있었죠. 클렘은 남북전쟁에 참전해 전사하고 샬롯은 전쟁고아들은 모아 키우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인 티나라는 소녀는 사실 샬롯과 클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딜리아는 거짓말로 남편 동생과 샬롯의 결혼을 막아요. 남편이 낙마사고로 죽자, 딜리아는 티나를 정식으로 입양하는데, 티나는 자신과 똑같은 길에 빠질까봐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는 샬롯보다 딜리아를 더 좋아합니다.

척 봐도 출생의 비밀과 친척간의 삼각관계로 구성된 신파입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저는 워튼의 중편도 이렇게 신파성이 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조이 앳킨스의 각본이 원작보다 더 신파라고 해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19세기 중반이라는 시대배경을 고려해보면 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충분히 말이 됩니다. 결혼에 대한 의무감, 미혼모라는 낙인에 대한 공포, 결혼하지 못하고 노처녀로 남은 여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경멸은 당시 샬롯과 딜리아가 속해있던 사회의 여성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큰 무게로 다가왔겠죠. 여전히 신파지만 이 무게를 측정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겹겹으로 쌓인 시대의 레이어가 만만치가 않잖아요. 옛날 작가가 쓴 옛날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옛날 극작가가 각색한 연극을 옛날 감독이 영화로 만든 걸 지금 보는 거죠. 오히려 30년대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더 냉소적으로 봤을 가능성이 커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큰 영화입니다. 페미니즘 영화라는 건 아니에요.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가부장주의 시스템이 자신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영화 역시 여기에 대해 그렇게 예민한 거 같지 않으니까요. 남자들의 비중이 작긴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세 여자들을 접착제처럼 엮고 있고요. 하지만 이들의 밀접한 애증관계는 베티 데이비스와 미리엄 홉킨스에게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연기 대결을 가능하게 해요. 그리고 이 둘은 연기합도 굉장히 좋습니다. 실생활에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요. 이 영화는 베티 데이비스가 다른 여자배우와 동등한 비중으로 나온 첫 번째 영화인데, 마지막 영화는 당연히 아니었지요. (15/06/22)

★★★

기타등등
클렘 역으로는 원래 험프리 보가트가 캐스팅되었는데 이틀 찍다가 잭 워너 맘 안 들어서 잘렸대요. 베티 데이비스의 요청에 따라 그 자리는 조지 브렌트에게 돌아갔어요. 베티 데이비스의 팬이라면 이 배우의 이름을 자주 접할 텐데, 자그마치 13편의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으니 말이죠.


감독: Edmund Goulding, 배우: Bette Davis, Miriam Hopkins, George Brent, Donald Crisp, Jane Bryan, Louise Fazenda, James Stephen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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