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 춘추전국시대 Confucius (2010)

2010.02.04 11:30

DJUNA 조회 수:7902

 

[공자 - 춘추전국시대]의 국내 예고편이 공자를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로 홍보할 때부터 전 이 영화가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공자 이야기를 아무리 털어 봐도 그가 ‘지략가’로 명성을 떨칠 부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고편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 영화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여간 예고편에 속지 마시길. [공자 - 춘추전국시대]는 비교적 전통적인 전기물이고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합니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한 자리를 하다가 쫓겨나 제자들과 짐을 질질 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죽기 직전에 간신히 노나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좋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영화보다는 텔레비전 시리즈가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비교적 긴 시간대를 커버하며 에피소드와 캐릭터 위주니까요. 하지만 영화도 가능합니다. 다루는 캐릭터들과 그에 수반되는 페이소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선정한다면요.

 

애재라. [공자-춘추전국시대]를 만든 사람들은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좋은 영화란 다루는 이야기와 스타일이 일치해야 하는 법이거늘,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갑니다. 이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을 테니, 모르고 이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국책영화들이 늘 빠지는 함정에 빠졌을 뿐입니다. 목표가 너무 많고 배를 이끄는 사공도 너무 많은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이 시기를 다루는 공자 전기영화가 마땅히 그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상갓집 개입니다. 당시 공자는 그렇게까지 보편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놀림도 엄청 당했고 구박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수난사를 읽어보면 구질구질과 찌질찌질 소리가 코러스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의 캐릭터도 징그러울 정도로 인간적이어서 종종 보면 그를 ‘성인’ 취급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들은 모두 재미있는 드라마의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공자를 진짜 ‘성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것도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성서적 인물로요. 영화 속의 공자는 잘못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옳은 말을 하며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를 존경합니다. 종종 그가 수염을 휘날리며 멋있는 자세를 취하면 뒤에서는 모세에게나 어울릴 법한 후광 조명을 쏩니다. 이래놨으니 관객들은 도대체 누가 그를 상갓집 개라고 놀려댔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니, 도대체 처음부터 왜 노나라에서 쫓겨났는지부터가 궁금합니다. 이건 정말 웃기는 짓입니다. 공자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성인’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가장 성서적 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다른 목표도 있습니다. 공자 전기영화이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무찌르는 히트작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윤발이 상갓집 개 역할을 하는 것만 가지고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CG 병사들이 개미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전쟁 스펙터클 장면들을 이곳저곳에 삽입합니다. 이 대부분은 공자라는 캐릭터를 그리는 데에 어떤 도움도 안 됩니다. 억지로 쑤셔 넣은 것이 너무 잘 보여서 헛웃음만 나올 지경이지요.

 

블록버스터가 되고 싶은 숨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공자 - 춘추전국시대]는 여전히 교과서 영화입니다.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 모두가 이름과 직책을 알리는 자막을 배정받습니다. 자막은 영화 중간에 등장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이고 관객들이 무엇을 빼먹었는지 설명하며 마지막에는 공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요약합니다. 그 때문에 스토리가 미니 시리즈 요약본처럼 퉁퉁 튀는 것이 더 눈에 뜨입니다.

 

영화는 짧은 편입니다.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보다 더 길면 어떻게 하라고!”라고 고함을 치고 싶으실 텐데, 재미를 떠나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캐릭터가 교류하고 움직일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공자 이야기를 그리면서 안회와 자로의 캐릭터가 거의 기능적 소도구에 불과하다면 그건 예수 영화에서 베드로나 가롯 유다가 빠지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신경이 쓰였는지 영화는 안회에게 다소 드라마틱한 퇴장을 부여했는데, 전 그게 더 기가 막혔습니다. 캐릭터와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스펙터클을 위해 액션을 억지로 집어넣은 게 다 보이는 걸요.

 

좋았던 부분은 있었나? 아마 주윤발 팬들은 [드래곤볼]보다 이 영화에 관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는 못하겠죠. 아, 전 저우쉰이 나오는 자견남자(子見南子) 에피소드에 잠시 집중을 했는데, 하나는 저우쉰이 예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 캐릭터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아나톨 프랑스나 오스카 와일드 분위기가 조금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 캐릭터에게 숨쉴 기회를 준 건 아니지만.

 

전 여전히 [공자 - 춘추전국시대]를 만든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국책영화의 한계 속에서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재능이 온전히 빛을 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예술적 실패는 처음부터 당연했던 겁니다. (10/02/03)

 

★☆

 

기타등등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 본토에서 쏟아져 나오는 애국영화들을 마음껏 놀려댔지만, 그럴 자격도 슬슬 사라져갑니다.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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