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 Kûki ningyô (2009)

2010.03.25 23:21

DJUNA 조회 수:11581

 

[공기인형]의 도입부는 소프트코어 포르노의 한 장면 같습니다. 외로운 일본 웨이터의 섹스 인형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얻어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코 이 영화(고다 요시이에의 만화가 원작이라고 합니다)를 포르노처럼 만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덜 음란할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이런 소재에 깨끗한 결백함을 불어넣어 주는 것 역시 저에게는 또 다른 게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매우 일본식 게임이지요.

 

영화의 의도가 무엇이건, 갑자기 살아난 섹스 인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주인 몰래 매일 밖으로 나가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 아르바이트 생으로 취직하고 자신만의 패션 센스를 구축하고 같은 직장에 일하는 청년을 사랑하게 되지요.

 

이 이야기에서 엄격한 논리를 따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공기인형]의 도쿄는 진짜 도쿄가 아니에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인간 행세를 하게 된 인형이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해도 눈치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화 속 공간이지요. 단지 이 동화 속 공간은 공주나 성과 같은 것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도시 도쿄의 재료들로 지어졌습니다. 섹스 토이와 비디오 가게,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노인, 섭식 장애를 가진 젊은 여자, 변태 오타쿠, 그리고 그들을 가두고 있는 현대 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들 말이죠.

 

이 세계 안에서 인형은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웁니다. 어떤 것은 아름답거나 즐겁고, 어떤 것은 슬프거나 추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건 그런 가르침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정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깔끔하고 애잔하며 약간 변태적인 느낌은 거의 기성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본풍입니다.

 

이들 중 섹스와 사랑에 대한 은유는 공기인형이라는 소재를 통해 창의적으로 빚어졌습니다. 공기인형은 떼어내 세척할 수 있는 성기를 가진 섹스 토이지만 정작 이 인형에게 섹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거든요. 공기인형의 섹스는 변태스럽게 에로틱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에 대해 또다른 종류의 기술을 가능하게 합니다.

 

배두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지요. 한 마디로 캐스팅의 승리입니다. 이 배우의 독특한 외모나 늘 보통 세계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독특한 태도는 마음을 가지게 된 공기인형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습니다. 자칫 가짜 같고 인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에 생생한 시적 진실을 불어넣어 준 것은 배우의 능력이고요. (10/03/25)

 

★★★

 

기타등등

배두나의 노출 장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 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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