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이츠카 Sayonara itsuka (2009)

2010.04.02 10:26

DJUNA 조회 수:10013


[사요나라 이츠카]는 1975년 방콕을 무대로 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너무 뻔해서 오히려 진부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민망할 정도죠. 결혼을 앞둔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신비스러운 이국의 땅에서 유혹적인 연상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들의 관계를 끊고 그의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건 진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건 그냥 장르예요.


이들이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들이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항공사 직원인 남자주인공 유타카는 좀 짜증나는 인물입니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호청년'으로 구제불능의 자뻑 증상이 있죠. 심지어 자신의 실수와 단점까지도 자뻑의 일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재주의 소유자입니다. 그걸 제외하면 그는 그냥 평범하며, 전 그에게서 별다른 장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가 방콕에서 만나는 여자주인공 토우코는 스핑크스처럼 신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나 과거는 대단한 게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걸 알아서 처음부터 관심 따위는 없고.


전 이들의 로맨스에서 굉장한 의미를 읽지도 못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전형성을 극복하기엔 지나치게 자기도취적이고 반복적이죠. 전 이들이 그냥 태국에서 롤플레잉 게임을 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짧게 끝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배우들에게 노역 분장을 시키고 25년 뒤까지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 전 과연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하고 궁금해했던 겁니다. 결말이 지나치게 길다는 이야기도 했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를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는데, 그건 영화의 내용보다 때깔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무대로 삼은 70년대 태국의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분위기는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배우들도 그 세계 안에서 무리 없이 잘 어울려요. 보고 있으면 동양을 무대로 한 구식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단지 그 주인공들이 영어 쓰는 서양인이 아닌 일본인들이라는 게 다를 뿐이죠.


영화의 스타일도 내용보다는 때깔에 더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영화적 기교가 굉장히 많은 영화입니다. 특수효과나 테크닉, 아이디어의 과시가 없는 장면을 오히려 찾기가 힘든 작품이지요. 종종 과하다는 느낌이 들고, 심지어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넣은 게 분명한 치기 어린 장면들도 꽤 됩니다. 그래도 이 장면들은 대부분 재미있으며, 비교적 단순한 이 이야기에 에로틱하고 화려한 색조를 넣어줍니다. 그 때문에 종종 이 평범한 이야기가 더 그럴싸한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제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죠.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장점입니다.


[사요나라 이츠카]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출신성분입니다. 츠지 히토나리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나카야마 미호와 나시지마 히데토시 주연의 일본어 영화인데, 국적은 한국인 거죠. 실제로 배우들만 일본인일 뿐, 감독을 포함한 주요 스태프진은 대부분 한국인들입니다. 원래 주인공들을 한국인으로 고쳐 찍을 생각이었지만 원작의 뉘앙스가 살아날 것 같지 않아 그냥 일본어 영화로 만들었다는군요. 그럴 수도 있지요. 하여간 일본영화인 척 하는 영화가 끝나고 한국인 스태프의 이름이 줄줄 올라가는 걸 보는 건 색다른 경험입니다. (10/03/30)


★★★


기타등등

아유미가 카메오로 잠시 나옵니다. 현대 파트에서 두 장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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