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2010.04.12 07:18

DJUNA 조회 수:8776


30여년 전, 비벌리 크로스는 레이 해리하우젠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들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할 수 있도록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다시 썼습니다. 그렇게 원래 소스에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었고 (왜 그리스 신화 이야기에 크라켄이 나오죠?) [오디세이아]와 같은 걸작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팬들은 그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 [Clash of the Titan](국내에서는 타이탄 족의 최후]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습니다.)을 좋아했습니다. 루이 르테리에도 그런 팬들 중 한 명이었으니 이 영화를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겠죠.


이야기가 신화와 많이 다른가요? 기본은 신화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혈통을 받은 반신인데, 메두사의 목을 자르고, 페가수스를 타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합니다. 오리지널 영화에서 비벌리 크로스는 여기에다 신과 인간의 대립을 추가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영웅 페르세우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로 바뀌는 과정의 첫 장을 그리는 것이죠. 그리고 르테리에의 영화는 이 테마를 극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험악해요. 신들은 무책임하고 사악하기까지한 강간범, 집단학살범, 사이코패스이고, 인간들이 그들로부터 받는 고통은 더 큽니다. 페르세우스는 단순히 괴물에게 먹힐지도 모르는 예쁜 공주님을 구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신과 맞서 인간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인류의 대변자입니다.


가치있는 주제입니다. 그리스 신화나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훨씬 보편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지만 이 주제가 영화 안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작부터가 원래 조금씩 울퉁불퉁하고 어색하잖아요. 리메이크 영화의 각본가들은 어떻게든 이 캠피한 이야기를 진지한 서사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원작의 어색함을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진지한 접근법 때문에 이야기의 캠피함이 더 튀기도 해요. 영화가 노골적으로 삽입한 정치적 공정성도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에게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고요.


가장 큰 문제는 각본이 페르세우스의 모험담을 테마가 되는 인본주의와 제대로 결합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원래 소스인 그리스 신화에 이리저리 발목을 잡히는 거죠. 그는 결국 신의 선물인 칼(광선검!)과 페가수스를 받아들이고 제우스와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올림푸스의 몰락을 그리려면 세월이 조금 더 흘러야 하지만, 신을 상대로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녀석이 중간에 이렇게 어정쩡하게 굴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암만 노력해도 좋게 봐줄 수 없는 망나니 사이코패스인 제우스가 다정한 아버지 흉내를 내는 것도 꼴보기 싫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덜컹거리는 이야기의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중간에 타협적으로 흐르긴 해도, 저는 그리스 신화의 신과 아첨꾼들에게 욕을 퍼붓는 듯한 영화의 태도가 좋았어요. (특히 다시 쓴 메두사 전설을 보시죠. 눈물이 앞을 가려요.) 정치적 공정성이 어색하다고 해도 이 영화의 주제에는 잘 맞는 편입니다. 전 원작 이야기를 살짝 배반하는 결말도 좋았답니다.


특수효과는 어떤가요?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구경거리예요. 솔직히 전 과거 스톱모션 영화의 리메이크에 나오는 디지털 특수효과를 보면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자연스러워 뭔가 빠진 것 같아요. 하지만 원작을 잊는다면 영화의 특수효과는 훌륭하고 거기에 삽입된 액션도 좋습니다. 괴물 전갈도 좋고 크라켄도 좋아요. 그렇다면 3D는? 괜찮은데([앨리스]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래도 꼭 넣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액션 장면에서는 벌어지는 소동에 집중하느라 3D에 신경이 전혀 안 쓰이고 가끔 부조처럼 어색해보이는 장면들이 나와요.


배우들은 무난한 편입니다. 원작도 만만치 않은 캐스팅을 과시한 영화였지만 전 리메이크가 나은 것 같더군요. 일단 매력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젊은 시절의 해리 햄린과 비교하면 샘 워딩턴은 준수하지 않습니까? 리암 니슨이 이끄는 올림푸스의 신들도 로렌스 올리비에가 이끌던 원작의 원로 배우들보다 더 보기가 편하더군요. 하긴 두 영화 모두 올림푸스 장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10/04/01)


★★


기타등등

1. 자막에서는 하데스가 제우스를 계속 형이라고 부르더군요. 번역하기 전에 검색 좀 할 것이지.


2. 이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오는 우리가 아는 이오가 아니죠. 그냥 이름만 빌린 것 같습니다.


3. 중간에 나오는 부보 카메오를 찾아보세요.


4. 리메이크 영화의 사연은 없었지만, 사실 오리지널 영화의 메두사도 애잔했어요. 메두사가 활을 준 것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버려진 폐허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은데 귀찮은 인간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외로운 괴물.


5. 원작에서 해리하우젠이 케토스 대신 크라켄을 불러온 이유는 비슷비슷한 용 모양 괴물을 또 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원작에 나온 괴물은 북구신화의 크라켄과 별로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리메이크 버전 괴물이 진짜 크라켄에 더 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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