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Cracks (2009)

2010.04.15 09:05

DJUNA 조회 수:12738


미스 G는 1930년대 영국의 기숙학교에서 다이빙 팀을 맡고 있는 교사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금지된 책을 돌려보며 세상엔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 이외의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이지요. 여러분은 이미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crème de la crème'이나 'carpe diem' 같은 말버릇을 기대하게 되고, 보니까 정말 이 사람도 그와 비슷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스 G의 경우 그것은 '욕망'이지요. 인생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욕망이라고요. 당연히 아이들은 미스 G를 숭배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미스 G는 아름답고, 패션 감각도 판타스틱하고, 선생이 되기 전에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녔고, 학교의 다른 선생들이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가르치는 걸요.


하지만 이 안정된 세계는 스페인 귀족의 딸이라는 피아마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피아마는 모든 면에서 미스 G와 경쟁할 만 합니다. 이국적으로 아름답고, 배경 빵빵하고, 세상 모든 곳들을 돌아다녔고, 어린 나이에 벌써 로맨틱한 스캔들의 경험이 있으며, 끝내주는 다이빙 선수입니다. 그들이 속해 있는 이 작은 세계에 회오리 바람을 불러오기 딱 좋은 아이죠.


처음에 피아마의 존재는 아이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미스 G의 총애를 받고 있던 다이에겐 충격이 컸죠. 하지만 피아마가 다이빙 팀에서 일으키는 균열은 생각보다 큽니다. 이건 그냥 아이들의 게임이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사람은 다이가 아니라 미스 G 자신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관객들과 아이들은 영화 초반에 주어진 캐릭터 설정을 재검토하게 되지요.


[크랙]이 그리는 기숙학교는 결코 로맨틱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이곳은 바다로 둘러싸인 감옥입니다. 아이들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격리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보고 듣고 믿는 것의 대부분은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이 판타지는 그 제한된 세계 안에서 유지될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세계가 무엇인지 아는 외부인이 이를 작정하고 깨트리려 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러분은 벌써부터 피아마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아가씨가 천식환자라는 걸 말해주면 더 그러겠죠.


쉴라 콜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사람은 리들리 스코트의 딸인 조던 스코트입니다. 스코트 가문의 재능은 유전되는 건지, [크랙]도 솜씨가 좋은 영화입니다. 스토리 감각이나 러닝타임의 활용 같은 건 오히려 아빠나 삼촌보다 더 좋아요. 그리고 아빠나 삼촌이 아무리 노력했어도 30년대 영국 기숙학교 아이들의 그 아슬아슬한 심리묘사를 조던 스코트만큼 잘 해내지는 못했겠지요. [크랙]의 세계는 기숙학교 판타지의 무대가 아니라 진짜 기숙학교입니다. 교복을 입은 '여배우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그 나이 또래 애들이 그 나이 아이처럼 나오는 그런 영화죠. 미화도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끝나긴 하지만 과장도 없습니다. 거의 악몽과 같은 이야기로 아이들을 끌고 가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요. 얼마나 많은 부분이 원작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저로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크랙]은 주목할 만한 감독의 첫 장편입니다. (10/04/14)


★★★


기타등등

진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학생들로 나오는 주연배우들 상당수는 20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는 건 이들이 특별히 어려 보여서가 아니라 캐스팅이 적절한 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감독: Jordan Scott 출연: Eva Green, Juno Temple, Maria Valverde, Imogen Poots, Ellie Nunn, Adele McCann, Zoe Carroll, Clemmie Dugdale, Sinead Cusack 다른 제목: 크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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