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 (2010)

2010.05.14 19:58

DJUNA 조회 수:14971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 이유에 대해 착각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요새 전 박중훈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도였던 [박중훈쇼] 때가 종영되었을 때도 그랬고, 이틀 전 [내 깡패 같은 애인]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해운대]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랬죠. 그 영화에서 카산드라 박사 역을 맡아 굉장히 열심히 연기했는데도 반응이 안 좋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더란 말입니다. "쓰나미를 막아냈어야 했는데 직무유기를 했다. 관객들은 무기력한 박중훈의 캐릭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음, 사실이 아닙니다. [해운대]에서 박중훈 캐릭터가 혼자 쓰나미를 막았어도 관객들의 반응은 여전히 안 좋았을 겁니다. 그 영화에서 그가 실패했던 건 그의 캐릭터가 무기력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의 배우 이미지가 과학자 캐릭터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박중훈은 경력에 비해 그리 연기폭이 넓은 편이 아니예요. 그는 발성이 좋지 못하고 외모도 그리 믿음감을 주지 못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디테일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대한민국 중하층 계급 남성들의 찌찔하고 궁상맞은 느낌인 것입니다. 유능한 과학자하고는 거리가 멀죠.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박중훈은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캐릭터 동철은 삼류 깡패입니다. 보스 대신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자리 하나 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죠. 명색이 깡패라면서 툭하면 얻어맞고 다니기나 하고, 주어지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동네에 룸살롱 포스터 붙이는 일 따위. [해운대]의 카산드라가 무기력했다고요? 이 영화에서는 더 심합니다. 무능함과 무기력이 바닥을 쳐요. 하지만 그래도 동철은 박중훈에게 완벽한 박중훈 연기를 할 기회를 줍니다. 동철의 찌질함과 궁상은 온전히 박중훈의 것입니다.


제목으로도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로맨스이기 때문에 여자주인공이 필요합니다.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은 모범생에 석사 학위까지 땄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세진입니다. 세진이 동철이 살고 있는 반지하방 옆집에 이사오면서 이들의 관계가 시작되지요.


세진을 연기하는 배우는 정유미입니다. 이 배우의 팬들은 박중훈이 상대역으로 나온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었죠. 하지만 결과물은 좋습니다. 박중훈이 후배 배우를 잘 챙겨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정유미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배우이기 때문이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세진 역을 할만한 나이의 배우들 중 박중훈과 로맨스 영화를 찍으면서 그를 도둑놈처럼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정유미에겐 그게 자연스럽습니다. 이 사람의 편견없이 독특하게 투명한 이미지 덕택에 아무리 괴상한 관계라도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죠.


그래도 이 영화의 로맨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스크린 위에서 잘 어울린다고 해도, 이들의 해피 엔딩을 믿거나 바라는 관객들은 없을 거예요. 그러기엔 둘의 입장이 너무 다르죠. 인생의 바닥을 치고 그러고도 모자라 삽질까지 하고 있는 동철과는 달리 세진에게는 보다 밝은 미래를 누릴 가능성과 자격이 있습니다. 결국 둘 사이엔 뚫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이 놓여 있는 거죠. 동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망가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진을 돕는 것입니다. 여기엔 연애감정보다 자신을 대신 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인생후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네, 신파입니다. 그것도 투박하고 촌스러운 신파지요. 영화가 따르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진부합니다. 갈등과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로 삽입한 장치들은 인공적인 티가 너무 나서 보기 민망할 정도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촌티나는 설정들 중 상당수가 먹힙니다. 뭐랄까, 공익광고 같아서 민망하면서도 묘하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단순무식한 장면들이 꽤 된단 말이죠. 세진의 마지막 면접 장면도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촌스러움은 2010년의 현실 세계에 상당히 성공적으로 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품고 있는 감상적인 낙천주의 정도는 용납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킬링타임 오락용으로 선택한 영화에서까지 현실을 보여주겠다며 주인공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현실세계가 어떤 곳인지야, 거기서 살다가 잠시 극장으로 피신 온 관객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10/05/06)


★★☆


기타등등


영화의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과 박중훈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모양이더군요. 결국 감독의 의견을 따르긴 했지만, 전 박중훈 편을 들고 싶습니다. 지금의 결말은 조금 사기인 것 같단 말이죠. 감독의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지는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감독: 김광식, 출연: 박중훈, 정유미, 박원상, 정우혁, 정인기. 다른 제목: My Dear Desperado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