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는 미하일 칼라토초프가 그의 대표작 [학이 난다] 이후 내놓은 작품입니다. 그의 파트너인 촬영감독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와 전작의 스타였던 타티아나 사모일로바도 함께 했지요. 이 영화는 해외에서 전작만큼 유명하지는 않은데, 내용이 대놓고 '소련 영화'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소련 내에서는 인기가 상당했대요.

시베리아에 파견된 4인조 탐험대의 이야기입니다.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 이들의 목표는 다이아몬드 광맥을 찾는 것이죠. 성공한다면 이들은 영웅이 되고 시베리아 원시림엔 다이아몬드 도시가 세워지겠지요.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이들은 점점 지쳐갑니다. 리더인 콘스탄틴이 아내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는 동안 유일한 여자인 타냐를 둘러싼 안드레이와 세르게이의 삼각관계가 시작되고요. 이 별 도움이 안 되는 연애 이야기는 다행히도 타냐가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뒤로 중단됩니다.

해피엔딩인가요? 아뇨. 영화가 3분의 1도 안 지났는 걸요. 이들이 광맥 지도를 완성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순간 모든 게 틀어져버립니다. 산불이 나고 무전기는 고장 났고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숲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겨울이 다가옵니다.

여기서부터 아마 당시 소련관객들과 저는 조금 다른 영화를 보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감흥은 달랐겠지요. [부치지 않은 편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통해 소비에트 인민의 불굴의 의지를 예찬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소련이 없어지고 환경문제가 중요해진 지금, 전 시베리아 원시림을 개발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동의는 안 되는 거죠.

아마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저에게 더 호러물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소련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가치관은 당연한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관객으로서 제가 자연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자연은 더 압도적이 됩니다. 물론 당시 관객들도 무섭긴 엄청 무서웠을 거예요. 이 영화에 나오는 시베리아 원시림은 웬만한 할리우드 SF 영화에 나오는 '외계 행성' 뺨치게 무섭고 낯설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정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그렇게 변해가요. 스틸만 보면 '여기가 과연 지구이긴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당시 관객들은 인간 의지의 승리를 믿고 있었잖아요. 전 그 믿음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전 자연스럽게 더 끔찍한 결말, 그러니까 요새 파운드 푸티지 영화라면 택했을 결말을 기대하게 되고 거기에 맞추어 영화를 보게 됩니다.

어느 관점에서 보건 아름답고 종종 압도적인 영화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스토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지만 스토리보다는 체험이 중요한 영화인데, 시베리아 숲 속을 중력이 없는 것처럼 날아다니는 우루세프스키의 카메라는 이번에도 정말 환상적입니다. 너무 환상적이어서 무서울 지경이고 그 때문에 의도보다 더 호러처럼 보이죠. 사보일로바도 좋긴 한데, 아쉽게도 이 영화에서는 배우의 스타성과 연기력이 [학이 날다]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19/03/12)

★★★☆

기타등등
실제 역사 이야기를 한다면, 소련 사람들은 시베리아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르 광산이라는 어마어마한 구멍을 팠죠.


감독: Mikhail Kalatozov, 배우: Tatyana Samojlova, Innokenti Smoktunovsky, Galina Kozhakina, Vasili Livanov, Yevgeni Urbansky, 다른 제목: The Unsent Letter, The Unmailed Letter, Letter Never Sent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310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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