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2011)

2011.01.17 23:43

DJUNA 조회 수:22042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도입부에서 내세우는 설정은 정조 시대에 탐정이라는 정오품 벼슬이 있어서, 요새 우리가 아는 탐정과 비슷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전 이게 전혀 좋은 농담 같지 않고 많이 무례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한자 단어들은 그냥 생긴 게 아니죠. 특히 유럽어권에서 건너온 단어들의 번역어들은 일본 번역가들의 필사적인 노력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수사관을 다룬 영화를 찍으며 제목에서 그를 명탐정이라고 부르는 건 상관없지만, 있은 적도 없었던 벼슬을 만들어 미래의 단어를 갈취하는 건 그리 옳아보이지 않습니다. 


이 설정이 과연 각본단계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사람들이 탐정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장면은 없으니까요. 촬영 중간에, 또는 이후에 설정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조선명탐정 정약용]이었지요. 그러다 정약용이라는 이름이 빠지고 지금의 제목으로 개봉되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도 정약용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요. 거중기나 가톨릭 개종, 정조와의 관계 같은 단서들이 조금씩 던져질 뿐이죠. 처음에는 영화 각본을 파는 아이디어였던 게 언젠가부터 은근슬쩍 사라져 버린 겁니다. 


하긴 이 설정도 불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원작은 김탁환의 역사추리소설 [열녀문의 비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약용이 아니니까요. 원작의 꽃덕후 명탐정 김진과 그의 왓슨인 이명방 캐릭터를 지워버리고 이제는 이름 없는 그냥 명탐정이 된 주인공과 왓슨 노릇하는 개장수를 하나 끼워넣어 그 이야기에 집어넣은 겁니다. 주인공이 남편을 따라 자진했다는 과부 사건을 수사한다는 내용은 대부분 남았지만 새로 넣은 이야기들도 많으며 결말의 반전도 성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되나? 네,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었나?라고 물으신다면 전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열녀문의 비밀]의 이야기를 굳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이유는 없어요. 특히 꼼꼼한 고증이 장점의 반인 소설을 퓨전 사극으로 만든 건 이해가 안 갑니다. 소설에서 고증 다음으로 중요한 건 페미니즘 주제인데, 이것 역시 퓨전 사극과 함께 들어온 코미디가 많이 갉아먹습니다.  이 이야기는 심각하게 이야기할수록 좋죠. 영화의 농담 따먹기 태도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작과 추가된 이야기가 따로 놀고, 추리와 코미디가 따로 놀며,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이 따로 놉니다. 특히 코미디의 문제가 심각해요. 이 영화의 코미디 장면들은 오로지 코미디 기능만을 하기 위해 삽입되었어요. 다들 '나는 코미디야!'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고 있지요. 


추리물로서도 영화는 장점이 없습니다. 원작의 이야기도 그렇게 치밀한 추리물은 아니었는데, 여기에 멋대로 이야기를 빼고 넣으니 이야기 구조가 아슬아슬 붕괴직전 건물 같은 꼴이죠. 캐스팅 때문에 반전을 중간에 포기한 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무얼 추리하고 무얼 밝히라는 건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최소한 관객들에게 머리를 쓸 무언가를 주어야죠. 


김명민은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장르 영화들에서보다 낫습니다. 캐릭터 덕을 어느 정도 보고 있죠. 자주 실수를 저지르고 늘 어리버리해 보이긴 해도, 주인공 명탐정은 영화 내내 부지런하게 생각하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적어도 이전처럼 '목소리만 좋은 바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하지만 김명민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쓰고 있는 건지, 이 영화가 주연 배우를 제대로 캐스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안 섭니다. 그의 코미디 연기에는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서 늘 조금씩 흉내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진짜 코미디 배우에게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연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B밖에 못 받는 그런 성격의 연기랄까. 오달수는 이런 영화가 체질이지만 그래도 캐릭터가 도와주는 [방자전] 같은 영화에서 더 좋습니다. 한지민은 예쁘고 이미지 게임의 이점도 갖고 있지만 그 뿐입니다. (11/01/13)


★★


기타등등

주인공이 가지고 다니는 야한 소설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의 제목이 가로로 쓰여 있는 게 정말 신경 쓰입니다. 세로로 쓰면 관객들이 못 읽을까봐 걱정했던 걸까요. 아니면 퓨전이니 그냥 막 나가자?


감독: 김석윤, 출연: 김명민, 오달수, 한지민, 다른 제목: Detective K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Detective_K-picture_143970.html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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