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2011)

2011.02.17 10:05

DJUNA 조회 수:10748


광해군 11년, 만주벌판. 명나라의 강압으로 청나라와의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조선군 세 명이 폐허가 된 낡은 객잔을 발견합니다. 고향까지는 사나흘 거리. 언제 청나라 군대가 그들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면 다들 합심해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 멍청이들은 안 그럽니다. 그러기엔 사사로운 감정이 너무 깊죠. 친구 사이인 군장 현명과 부장 도영은 죽마고우지만 알고 봤더니 철천지 원수이기도 합니다. 현명이 도영의 아버지를 팔아넘겼거든요. 탈영병인 두수는 현명이 무섭고, 그를 이 꼴로 만든 양반들이 다 싫습니다. 이들이 객잔에 짱박혀 있는 동안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져 가고, 결국 제가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것들 중 가장 찌질한 난투극이 시작됩니다. 다들 잡아놓고 하워드 혹스 서부극 몇 편을 강제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부극 이야기가 나왔는데, 박훈정의 [혈투]는 진짜 서부극 맞습니다. 무대도 한국 영화가 유사 서부극을 만들 때 툭하면 써먹었던 만주 벌판이지요. 아파치에게 몰살당한 기병대 패잔병들이 요새 안에 갇혀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마 박훈정도 자기식의 만주 웨스턴을 상상하고 이 각본을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영화는 찌질한 만큼 컴컴합니다. 오로지 부정적인 감정만 존재하는 영화지요. 그럭저럭 밝은 장면들은 모두 회상 장면에만 있고 그것은 앞으로 닥칠 재난의 재료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모두 당파싸움과 계급 갈등, 멍청한 외교의 희생자들로,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고국엔 미래 따위는 없습니다. 


이 허무주의는 강렬하고 종종 매력적이지만 그 때문에 드라마가 지나치게 단순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갈등의 조합이 그리 많지 않은 겁니다. 이 영화에는 시작부터 관객들이 어느 정도 포기하게 만드는 단순함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세 주인공 어느 쪽에도 몰입하기 힘들고요. 하지만 적어도 영화는 타협을 안 합니다. 캐릭터들에게 시대착오적인 장점을 주어 아양을 떠는 일도 없고요.


배우들은 모두 좋은 편인데, 그래도 재료가 조금 더 섬세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고창석의 경우 녹음 문제인지 종종 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고, 현재 장면에서 진구의 일상어는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고 조금씩 튀더라고요. (11/02/17)


★★★


기타등등

지나치게 현대적인 청군의 헤어스타일에는 적응이 안 되더군요. 그런 날씨에 맨 머리로 돌아다닌다는 설정도 어색하고.


감독: 박훈정, 출연: 박희순, 진구, 고창석, 장희진, 김갑수, 최일화, 다른 제목: The Showdown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Showdown.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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