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르 Amer (2009)

2010.07.17 17:16

DJUNA 조회 수:10218


아무런 정보 없이 [아메르]가 상영되는 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은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작품이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호러 영화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 고풍스러운 와이드스크린 화면과 알록달록 조명, 배경에 깔리는 브루노 니콜라이와 스텔비오 치프리아니의 짤랑거리는 음악이 다른 시대와 다른 장르에 속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아메르]는 70년대 이탈리아 호러 영화가 아닙니다. 2009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이지요. 심지어 이탈리아 영화도 아니에요. [아메르]는 벨기에에서 나온 프랑스 영화입니다. 배우들이 프랑스어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괴상해요. 분명 저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로 말을 해야 해요. 아니면 어색하게 더빙된 영어거나.


이 영화의 정체는 뭘까요? 이 영화의 감독/작가인 엘렌 카테와 브뤼노 프론자니는 한 가지 재미있는 형식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6,70년대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테마, 스타일, 재료들을 그대로 가져오되, 그것들로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드는 것이죠. 더 이상 아방가르드가 전위가 아닌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라니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영화는 아나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인생의 세 단계마다 겪는 중요한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1부는 아직 어린 소녀 아나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저택에서 겪는 일이고, 2부는 틴에이저가 된 아나가 엄마와 함께 외출했을 때 겪는 일, 3부는 성인이 된 아나가 홀로 버려진 저택에 돌아왔을 때 겪는 일입니다. 한 챕터마다 30분 정도 잡아먹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겪느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아방가르드 영화라고. 영화는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정돈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할 내용의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야 데렌의 영화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영화의 주요 테마가 섹슈얼리티와 죽음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들, 끈적거리는 나무의 수액, 벌레가 우글거리는 동물의 시체, 눈길만으로 여자의 옷을 벗겨버릴 것 같은 라틴 남자들, 장갑을 낀 살인마들은 모두 이 두 주제를 노래하기 위한 음표들입니다. 그것들이 바바/아르젠토 스타일로 스크린 위에 제대로 박히면 충분하죠. 굳이 이야기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겁니다.


이런 장난은 지나치게 노골적인 구석이 있고, 또 90분은 그런 장난만 치기엔 좀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르]는 재미있는 시도입니다. 일단 이탈리아 장르 영화 재료들로 이런 식의 장난을 친 사람은 아직 없었으니 노골적이라도 일단 신선합니다. 그리고 카테와 프론자니는 이 장난을 기가 막히게 잘 쳤어요. 이렇게 정교한 모방이라면 자기 것을 하나도 넣지 않는다고 해도 상당한 실력이라고 인정해줄 수밖에 없어요. (20/07/17)



기타등등

영화 초반에 화면 초점이 맞지 않아 짜증이 엄청 났었답니다. 


감독: Hélène Cattet, Bruno Forzani, 출연: Marie Bos, Delphine Brual, Harry Cleven, Bianca Maria D'Amato, Cassandra Forêt


IMDb http://www.imdb.com/title/tt142635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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