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시간선을 갈라 자기만의 [스타트렉] 우주를 만들었던 J.J. 에이브럼스는 그의 두 번째 [스타트렉] 영화인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본격적으로 원작을 갖고 놀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번 영화는 엔터프라이즈 호 장난감을 들고 휘이이잉! 소리를 내며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어린애의 놀이와 비슷해요. 장난감들은 이미 갖고 있습니다. 우주선 모형도 있고 액션 피겨도 있어요. 단지 아이들의 놀이가 그렇듯, 텔레비전으로 본 연속극이나 영화를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놀 시간입니다. 

존 해리슨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스타 플리트의 장교가 런던에서 테러를 저지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해리슨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그는 크로노스라는 클링온 행성으로 달아났습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크로노스로 날아가는데, 알고 봤더니 해리슨은 그들에게는 몰랐던 비밀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어서 더 이상 이야기를 못 하겠는데, 그래도 원작 [스타트렉] 팬들이나 정보 빠른 영화광들은 모두 짐작했거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여전히 원작을 쉽게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건드려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죠. 그 때문에 이 시퀄/프리퀄은 일종의 리메이크이기도 합니다.  물론 팬돌이의 애정이 팍팍 돋는 리메이크죠. 

영화는 [스타트렉] 팬들과 일반 관객들을 위해 이중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지구의 운명을 건 모험과 액션이 펼쳐집니다. 밑에서는 끊임없이 팬들에게 윙크를 던지며 농담을 하고 이야기를 바꾸는 등의 장난을 치지요.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 굳이 오리지널 [스타트렉] 시리즈나 영화를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원작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스타트렉]스러운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이브럼즈가 [스타트렉]의 원래 정신을 무시하고 영화를 지나치게 요란한 액션 영화로 만들었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리부팅 이전의 [스타트렉] 영화들을 생각해보시죠. [스타트렉]스러운 [스타트렉] 영화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발전을 가로막는 60년대식 아이디어의 한계는 점점 노골적이 되었고요. 새 [스타트렉]도 여기에서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합니다만, 그래도 이전의 [스타트렉] 영화들이나 시리즈에 비해 훨씬 신선해보입니다.

영화는 다소 산만하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스타워즈] 영화들과는 달리, [스타트렉] 영화는 팀의 협력이 중요하죠. 여전히 중요한 인물은 커크와 스포크지만, 영화는 다른 승무원들에게도 꼼꼼하게 자기 역할을 할 자리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신이 난 건 스코티 같더군요. 아마 배우  사이먼 펙의 기크다운 열광에 전염되어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스타트렉] 팬덤을 넘어서면, 21세기 현대 미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은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9/11이라는 세 개의 숫자로 간단하게 설명이 됩니다. 이런 식의 은유 자체는 흔해빠졌지만,  전 영화가 테러와 테러리즘을 다루는 태도가 충분히 성숙해있다고 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주제가 [스타트렉]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속편으로 무엇을 원했는지에 따라 [스타트렉 다크니스]에 대한 반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관점으로 보더라도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사로잡는 신나는 모험담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쾌감은 아이맥스 상영에서 배가 됩니다. 물론 CGV의 가짜 아이맥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13/05/18)

★★★☆

기타등등
영화가 끝나면 엔터프라이즈는 드디어 5년 간의 우주여행 미션에 나서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기회지요. J.J. 에이브럼스가 이 기회를 얼마나 활용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 적어도 분장한 배우들에게 외계인 역할을 시키는 건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 J.J. Abrams, 배우: Chris Pine, Zachary Quinto, Zoe Saldana, Karl Urban, Simon Pegg, John Cho, Benedict Cumberbatch, Anton Yelchin, Bruce Greenwood, Peter Weller, Alice Eve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810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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