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샌더스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각색물,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섞어서 휘젓고 자기 양념도 조금 친 다음 볶아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래도 되지요.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아귀가 맞다면 말이죠. 일본판 [링]의 아이디어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기더라도 얼마든지 먹히지 않습니까? 일본 호러 특유의 뉘앙스는 많이 날아가겠지만 미국만의 다른 것을 추가해서 빈틈을 채울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원작(들)의 아이디어들을 가져와 자기만의 스타일을 얹어 새로운 시공간에 이식한다면 다들 그러려니 할 겁니다.

하지만 루퍼트 샌더스의 영화는 그러지를 않았어요.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각적 매력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운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자신이 없었달까.

그 때문에 영화는 좀 괴상한 시공간을 택했습니다. 설정엔 뉴 도쿄라고 나와 있다던데 영화 안에선 끝까지 국적이 밝혀지지 않는 다국적 공간이에요. 사방엔 일본어와 한문이 널려 있는데, 동양인의 인구 비율이 캘리포니아보다 낮은 곳. 다시 말해 오시이 마모루 영화 속과 비슷한 비주얼을 갖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이 부글거리는 곳입니다. 아, 동양인도 좀 나와요. 기타노 다케시가 아라마키 과장으로 나오는데 오로지 일본어로만 말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듣습니다. 진한이 한이라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그 역할은 중국투자받은 할리우드 영화 속 토큰 동양인이죠.

당연히 어색합니다. 그리고 영화도 그 어색함을 인식하고 있어요. 심지어 그 어색함을 역이용하려 하기도 하죠. 이 영화는 전부터 화이트워싱 문제로 말이 많았는데, 개봉 이후에 이 논란이 사라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영화의 내용 자체가 화이트워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 아이디어가 아주 재미없다고는 말을 못하겠는데,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로만 소비될 수는 없어요.

스토리도 배경만큼 프랑켄슈타인스럽습니다.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 영화에서 유명한 여러 장면들을 가져와 그대로 카피하고 있는데, 정작 그 액션이 벌어지는 스토리의 맥락은 다르거든요. 아귀가 안 맞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몇몇 부분들은 그냥 의무적으로 넣은 거고.

새로 짜넣은 이야기는 할리우드 식으로 느끼합니다. 내용은 시로 마사무네와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들보다 [S.A.C.] 텔레비전 시리즈에 살짝 더 가까운데, 기억상실증을 앓는 주인공의 정체성 고민과 사악한 자본주의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손쉽고 감상적인 방식으로 풀고 있어요. 주인공이 수퍼히어로물 주인공인 것처럼 '최초의 유일한' 존재임이 강조되는 것도 영 걸리고. 깊은 고민이 없는 각본입니다.

좋은 게 뭐가 있냐고요. 주연을 맡은 스칼렛 조핸슨이 아주 예쁩니다. 종종 쥘리에트 비노쉬랑 같이 나와 연기를 섞는데 그것도 좋고.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신경이 쓰였던 여성 신체의 선정적인 묘사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의외로 실사 재현이 잘 된 부분도 있고. 하지만 암만 봐도 무리한 시도였어요. 너무 용감했던 게 아니라 너무 겁이 많았던 거죠. (17/03/29)

★★

기타등등
비스타 비율입니다. 제가 건대입구 롯데 시네마에서 하는 시사회에 갔던 것도 그 때문.


감독: Rupert Sanders, 배우: Scarlett Johansson, Pilou Asbæk, Takeshi Kitano, Juliette Binoche, Michael Pitt, Chin Han, Danusia Samal, Lasarus Ratuere, Yutaka Izumihara, Tawanda Manyimo, Peter Ferdinando, Anamaria Marinca

IMDb http://www.imdb.com/title/tt121982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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