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스타트렉] 영화판은 짝수편이 좋고 홀수편이 빈약하다고 하죠. 이게 얼마나 그럴싸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편인 [칸의 분노]와 4편인 [귀환의 항로]가 여러 모로 사랑을 받고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3편인 [스팍을 찾아서]가 특별히 나쁜 영화라는 생각도 안 들고 6편인 [미지의 세계]가 특별히 좋았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다음 세대] 기반으로 가면 그 규칙은 더 흐리멍덩해졌죠. 당시엔 이미 홀수망작/짝수수작이란 공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속편이 나올 때마다 짝수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그래도 8편인 [퍼스트 콘택트]는 매력적인 영화이긴 합니다.

오늘은 [스타 트랙 4: 귀환의 항로]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죠. [칸의 분노], [스팍을 찾아서], [귀환의 항로]는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시 보고 한꺼번에 다룰 수도 있었겠지만, 넷플릭스엔 3편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칸의 분노]도 오리지널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든 영화이니... 적당히 하기로 합시다.

하여간 영화가 시작되면 2편에서 장례식까지 치렀던 스팍이 부활해있고, 엔터프라이즈호는 파괴되어 우리의 주인공들은 클링온 버드 오브 프레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엔터프라이즈호가 거의 나오지 않는 드문 [스타트렉] 영화예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더 알고 싶으시다면 넷플릭스에게 3편도 틀어달라고 정식 요구를. 특별히 모르셔도 4편 내용을 따라잡는 데엔 큰 문제가 없습니다만.

영화의 메인 액션은 좀 아서 C. 클라크스럽습니다.끝에 야광봉 단 라마처럼 생긴 외계인의 우주선이 지구를 찾아와 이상한 신호를 보내는데, 커뮤니케이션 시도의 부작용 때문에 지구는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우주선이 이미 오래 전에 멸종한 혹등고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우리의 주인공들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986년(그러니까 이 영화가 개봉한 해)으로 돌아가 살아남은 흑동고래를 잡아서 다시 23세기로 가져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결론내립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물론 안 됩니다. 하지만 [스타트렉] 세상에선 이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전에도 일어났었으니 커크와 일당들이 이런 결론을 내린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먼 우주에서 온 우주선이 눈앞에 있는 인간에겐 티끌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고 대신 멸망한 고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설정은 어처구니 없는 만큼 통쾌한 구석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1986년에 도착한 뒤로 영화는 코미디가 됩니다. 그러니까 1980년대 사람들이 상상한 23세기 사람들이 80년대의 야만스러운 시대에서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내용인 거예요. 체호프는 소련 스파이로 오인당하고, 커크와 스팍은 20세기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녔던 '컬러풀한 은유'를 흉내내고... 다행히도 이 코미디들은 썩 좋습니다. 냉전이 끝물인 80년대의 분위기와도 썩 잘 어울리고, 재클린 수잔과 해롤드 로빈스의 재평가 농담은 볼 때마다 웃깁니다. 헐렁하고 어이없지만 반전과 환경보호의 메시지가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영화이죠. 도입부만 무시한다면 [스타트렉] 영화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이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할 거예요.

영화는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낡았습니다. 예를 들어 커크와 일당들이 들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들은 지금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구식이지요. 결말의 특정 장면을 보는 요새 관객들은 왜 썸타는 두 주인공이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지 않는지 궁금할 겁니다. 하지만 이 구닥다리 느낌이 영화의 질을 깎아내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매력을 더한다면 더했죠. (17/07/11)

★★★

기타등등
스칼지의 [레드셔츠]가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겠죠. 아, 그리고 [스팍을 찾아서(스포크를 찾아서)]는 정식 다운 받아서 볼 수 있어요.


감독: Leonard Nimoy, 배우: William Shatner, Leonard Nimoy, DeForest Kelley, James Doohan, George Takei, Walter Koenig, Nichelle Nichols, Jane Wyatt, Catherine Hicks, Mark Lenard

IMDb http://www.imdb.com/title/tt009200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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