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 14:58
니사 하디먼의 [씨 피버]는 아일랜드 SF 호러 영화입니다. 그냥 호러는 꽤 있지만 SF 호러는 드문 종이죠. 이 서브 장르에 속한 아일랜드 영화는
단 하나밖에 모르겠군요. [그래버스]요. 더 알고 계시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히드먼은 주로 텔레비전에서 연출자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씨 피버]는 첫 장편영화입니다. TIFF에서 반응이 좋아서 극장 개봉에 대한 기대가 컸을 텐데, 아, 극장에 걸릴 무렵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터졌어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못 봅니다. VOD와 OTT로 직행했지요. 하지만 좀 융통성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주에
극장에서 걸렸어요. 이 모든 상황은 여러 면에서 아이러니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 전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거든요.
거의 완벽한 쿼런틴 시대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시오반이라는 생물학도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실습을 위해 작은 어선에 타요. 바다에서 어선은 오징어와 비슷한 동물의
습격을 받습니다. 동물은 떨어져 나가지만 승무원 한 명이 유충에 감염되어 죽습니다. 무전기가 망가져 해경에 연락도 할 수 없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 중 누가 더 감염되었는지 몰라요. 답은 단 하나. 자기 격리입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쿼런틴 영화라고.
이야기 자체는 익숙합니다. 일단 19세기부터 장르화된 메리 셀레스트호의 이야기가 있지요. 여기에 20세기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한
[에일리언]와 [괴물]의 전통이 들어갑니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내용 자체만 보면 도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차별성이 있는 부분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입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외부에서 온 괴물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강조하면서
자극 강도를 높이려 하지요. 하지만 [씨 피버]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인 해양 생물에 대해 어떤 감정이 없습니다. 영화는 이 생물을
괴물처럼 그리지도 않아요. 그냥 우리가 모르는 낯선 존재인데, 어쩌다보니 인간이 이 생물의 세계에 침입한 것입니다. 선원들은
당연한 이유로 공포에 떨지만, 주인공 시오반은 그 와중에서도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오반의
시점에서 보여지고요. 그 때문에 클라이맥스는 다른 식으로 그려집니다. 우리를 죽이려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폭발로 해치우는 장면 따위는 없어요. 영화는 호러보다는 SF에 기울고 있고 전 이 태도가 좋았습니다.
지금은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밖에 없지만, 원래 의도는 기후변화에 대한 은유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팬데믹의 이야기로 수렴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어느 쪽이건 인간의 개입에 의해 변화하는 자연이 인간을 위기로 내모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팬데믹은 그 과정의 여러 얼굴 중 하나일 뿐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개별 사건과 마주쳤을 때 비슷하게 대응할 것이고요.
[씨 피버]의 이야기가 지금의 이야기와 그럴싸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20/05/15)
★★★
기타등등
이 영화의 생명체는 코로나바이러스처럼 감염이 쉽게 되는 종류는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무전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상황이었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와 마주쳤을 때는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겠지요.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건 당연하고.
감독: Neasa Hardiman,
배우:
Connie Nielsen,
Hermione Corfield,
Dougray Scott,
Olwen Fouéré,
Jack Hickey,
Ardalan Esmaili,
Elie Bouakaze
IMDb https://www.imdb.com/title/tt271638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8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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