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2021) [TV]

2021.12.07 22:15

DJUNA 조회 수:1959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원작은 정소현의 동명 단편입니다. 새로 나온 단행본 기준으로 40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예요. 이 재료로 1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드는 건 좀 이상한 계획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원작을 읽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굉장히 압축된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하는 소설이에요. 원작의 이야기를 풀어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지 전 여전히 극장용 장편영화 정도의 길이가 더 맞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주인공은 성공적인 화가이자 에세이 작가인 정희주입니다. 어느 날 딸인 리사가 학교 선생에게 맞고 오는데, 그 선생은 알고 봤더니 희주의 옛 독일문화원 동기였고 그림 교사였던 구해원이었지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과거가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 희주는 해원의 남자친구였던 서우재(원작의 유석)을 빼앗았고 아일랜드 유학시절에 같이 살았던 거죠. 희주가 화가 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서우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채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원작에는 없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와 설정이 들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이 드라마는 요새 지나치게 많아진 엘리트 학교 이야기이고 부유층 이야기예요. 원작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희주의 남편 안현성은 사학재벌 집안의 일원이고 이 안에서는 익숙한 파워게임이 진행되는 중입니다. 역시 원작엔 없었던 희주의 동생과 해원의 엄마가 각각 새 설정과 이야기를 갖고 드라마에 들어왔고요.

새 이야기가 들어가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원작을 일종의 씨앗처럼 삼고 있으니까요. 이들 중 상당수는 원작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하는 데에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쁜 이야기도 아니고 해원의 엄마 정연과 같은 경우는 캐스팅과 캐릭터가 좋아서 원작과의 연결성과 상관없이 몰입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주인공 주변의 우주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여전히 재벌, 엘리트 학교 이야기는 지나치게는 생각이 들지만요.

하지만 드라마는 몇 가지 심각한 계산착오를 저지릅니다. 그건 원작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기본 기둥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대충 넘기기가 쉽지 않아요. 그 기둥은 무엇일까. 어느 방향으로 가건, [너를 닮은 사람]은 희주와 해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두 주인공은 최대한 자주 만나고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끝까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드라마도 그래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고현정이 연기하는 희주와 신현빈이 연기하는 해원이 만나는 거의 모든 장면은 불똥이 튀는 걸요. 하지만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아일랜드 병원에 누워있던 우재를 깨워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희주와 해원의 이야기여야 했던 많은 장면이 우재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작에 없다고 해서 캐릭터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희주의 남편만 해도 원작에서는 가볍게 그려졌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삼차원적 캐릭터니까요. 하지만 우재는 좀 애매합니다. 원작에서 유석은 꽤 길게 묘사된 인물이지만 철저하게 희주와 해원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있고, 드라마와는 달리 원작에선 이미 죽어 퇴장했거든요. 드라마는 이 인물을 되살려 새 이야기를 주는데, 그렇다고 이 공허한 캐릭터에 특별한 깊이나 무게, 매력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우재는 그냥 원작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다면 했을 법한 행동을 좀비처럼 할 뿐이지요. 그 결과는 나름 드라마틱하지만, 이 인물이 없었다면 훨씬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을 캐릭터의 역학관계가 날아가버립니다.

구조면에서도 드라마는 이 캐릭터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우재를 둘러싼 비밀은 경험없는 시청자들도 금방 눈치챌 수 있을만큼 단순한데, 드라마는 이걸 갑갑하게 질질 끌면서 진행을 막아요. 클라이맥스와 결말은 상당히 공을 들였고 작가도 여기에 자부심이 있을 거 같은데, 과연 이것이 도입부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끝맺는 최선의 길이었는지는 의심이 갑니다. 여전히 좋은 배우들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드라마지만 최종적으로 우선순위 계산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21/12/07)

기타등등
드라마의 상당 부분이 아일랜드에서 벌어집니다. 아일랜드 촬영팀에서 찍어 보낸 소스들을 편집과 CG를 통해 국내 배우들 촬영분과 이어붙인 것 같더군요.


극본: 유보라, 감독: 임현욱, 배우: 고현정, 신현빈, 김재영, 최원영, 김보연, 신동욱, 장혜진, 김수안, 서정연, 김상호, 김호성 다른 제목: Reflection of You

IMDb https://www.imdb.com/title/tt14684086/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drama_Reflection_of_You.php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