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L'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2010)

2013.06.30 15:37

DJUNA 조회 수:11141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픽처]는 케네디 버전 하이스미스입니다. 도입부와 주제 같은 것이 [리플리] 시리즈과 거의 같죠.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디고 있는 변호사가 아내와 바람 피우고 있는 이웃집 사진작가에게 따지러 갔다가 그만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는 죽은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하고 죽은 사람 행세를 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나는데, 그러는 동안 죽은 사진작가에게는 없었던 사진작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라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탐낼 법도 합니다. 결국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하나 나왔는데 엉뚱하게 프랑스 영화예요. 케네디는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인기가 있다니 보기만큼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만. 하여간 그러는 동안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원작소설이 미국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면, 영화는 프랑스인을 주인공으로 프랑스에서 시작했다가... 세르비아로 간 것 같습니다. 찍기는 옆 동네 몬테네그로에서 찍은 것 같습니다만.

이상한 건 무대가 바뀌었다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 사람들이야 늘 영어권 소설들을 영화로 만들어왔으니까요. 진짜로 이상한 건 소설에서는 정말로 재미있었던 사건들이 정작 영화 속에서는 별 재미가 없다는 거죠. 전 로맹 뒤리가 연기한 변호사 주인공이 사진작가의 시체를 은닉하는 동안 '왜 이게 지루할까?'하고 궁금해했습니다. 벌어지는 일이 재미없을 수가 없는 설정인데도 그냥 따분하더라고요. 의무적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야 하는 부분에서 영화는 멍하니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야기는 대충 원작을 따라가기는 하는데, 원작이 가진 인간적 재미, 서스펜스, 아이러니, 예술에 대한 고찰이 거의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기본 줄거리에 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더해지려고 하면 영화는 가차없이 원작의 그 부분을 잘라내더군요. 그 부분이 과연 영화화하기 어려운 건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잘려나간 어떤 장면은 거의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은 거 같았지요. 그런데 영화는 그 부분을 잘라버리고 밋밋하게 처리해버렸습니다. 그냥 감독이 액션과 서스펜스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럼 영화는 이 빈 자리를 자신 만의 무언가로 채워넣으려 했던 걸까? 저에겐 그것도 잘 보이지 않더군요.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원작에서는 묘사로만 나왔던 주인공의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대단한 플러스는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제대로 된 전문가를 불러 사진을 찍어도,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한 작품을 따라가기는 힘들죠. 바뀐 결말도 소설보다 약하고요.

로맹 뒤리의 연기는 좋은 편이지만, 이렇게 드라마가 약화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닐스 아르스트룹도 등장 시간 동안 존재감만 강하다가 별 이유도 없이 심심하게 퇴장. 카트린 드뇌브는 카메오 출연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요. 다들 이보다는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들이었는데. (13/06/30)

★★

기타등등
원작을 안 읽었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원작과 많이 다르면서도 썩 재미있는 영화였던 [파리 5구의 여인]을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아요.

감독: Eric Lartigau, 배우: Romain Duris, Marina Foïs, Niels Arestrup, Branka Katic, Catherine Deneuve, Eric Ruf, 다른 제목: The Big Picture

IMDb http://www.imdb.com/title/tt153381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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