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Viktoria (2014)

2015.05.28 05:22

DJUNA 조회 수:5895


마야 비트코바의 [빅토리아]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도입부와 중간중간에 레이건이나 대처, 호메이니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나오는 뉴스 클립이 깔리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이 믿음은 타이틀롤인 빅토리아가 등장하는 순간에 깨져버립니다. 절대로 사실일 수 없는 이야기예요. 당연히 검색을 해봤습니다. 역시나.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야기는 감독의 자서전적 이야기라는 의미밖엔 없더군요.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뮌히하우젠 남작 스타일의 허풍인 겁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우린 보리야나라는 불가리아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보리야나는 불가리아가 싫습니다. 망명이라도 해서 서구로 가고 싶어요. 서구에 가서 무얼 할 생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코카 콜라를 마시면서 자유의 여신상 모양의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심통맞은 얼굴을 보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없는 게 분명합니다. 그냥 짜증나는 불가리아의 현실에 대한 막연한 대안일 가능성이 커요.

보리야나는 임신을 합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지우려고 별 짓을 다 하지만 실패. 결국 빅토리아라는 아기가 태어나는데... 이 아기는 배꼽이 없습니다! 네, 분명 바로 몇 초 전에 탯줄을 자르는 장면을 봤는데도 배꼽이 없어요. 그냥 이상한 해외 토픽의 주인공으로 끝날 뻔했던 빅토리아는 병원을 방문한 불가리아 수상 토도르 지프코프가 아이를 대녀로 삼고 공산주의 체제 선전용으로 이용하면서 국민적인 스타가 됩니다. 그 때가 1980년.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10년 전이죠.

영화는 판타지에 기반을 둔 정치 풍자물과 자서전적 드라마가 섞여 있습니다. 전반부는 경쾌한 뮌히하우젠 남작식 허풍으로 불가리아 현대사의 익살스러운 다시쓰기죠. 다른 하나는 삼대에 걸친 모녀 관계로 엮인 세 여자에 대한 드라마인데, 이건 좀 암담합니다. 배꼽 없는 아이라는 메타포가 보여주듯 이들 관계는 차갑기 그지 없어요. 원흉은 엄마를 증오하고 딸에게 애정이 없는 보리야나죠. 참 나쁜 엄마인데, 전 은근히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보리야나가 영화 내내 겪는 끝나지 않는 짜증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56분으로 많이 긴 편입니다. 지루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빅토리아가 청소년이 된 후반부는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어야할지 몰라 애를 먹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대사를 최소화하고 연기도 극도로 제한한 채 밀고 가는 이 작품에는 경쾌한 무성영화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품고 있는 감정의 반이 짜증인 영화지만 중간까지는 유머도 풍부하고요. 첫 장편영화로 의무감을 품고 있던 이야기를 토해냈으니 다음엔 더 꽉 짜여지고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거라 기대해보는 거죠. (15/05/28)

★★★

기타등등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최초의 불가리아 영화라고 합니다.


감독: Maya Vitkova, 배우: Irmena Chichikova, Kalina Vitkova, Daria Vitkova, Mariana Krumova, Dimo Dimov, Georgi Spasov

IMDb http://www.imdb.com/title/tt340087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9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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