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계단 The Ten Steps (2004)

2010.12.18 22:49

DJUNA 조회 수:9218

 

엄마 아빠는 저녁 약속 때문에 외출했고, 케이티는 말썽쟁이 남동생과 함께 집을 보고 있습니다. 한참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만 픽하고 나가버리는 전기. 빨리 퓨즈를 고쳐야 하지만, 케이티는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지하실이 죽도록 무섭죠. 케이티는 식당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전화기를 든 채 지하실로 내려갑니다. 지하실에 이르는 열 개의 계단을 하나씩 세어가면서요.


[열 개의 계단]의 도입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친숙합니다. 어른들의 보호 없이 집에 남겨진 십대 소녀.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 지하실. 이보다 진부한 호러 공식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브렌든 멀도우니가 감독한 이 아일랜드 영화에서 이런진부함은 단점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죠. 멀도우니는 이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을 거의 신화화된 익숙한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멀도우니의 목표는 '갈고리 살인마' 이야기만큼이나 친근한 도시전설의 효과를 내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전 이 영화의 모델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또는 들었어도 잊어버렸지만), [열 개의 계단]의 이야기는 캠프파이어 앞에 둘러앉아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어린이 괴담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능숙한 이야기꾼이라면 영상의 도움 없이도 이 이야기의 으스스함을 살려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멀도우니는 라디오 드라마가 아닌 그냥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는 영화가 가진 도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합니다. 더블린 중산층 가정의 사실적인 묘사는 관객들을 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본격적인 호러가 시작되는 계단장면부터는 카운트다운의 타이밍도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지요. 하긴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를 최대한으로 뽑아내려면 일단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0/12/18)



기타등등

2005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단편심사위원상 수상작입니다. 


감독: Brendan Muldowney, 출연: Jill Harding, William O'Sullivan, Paula Lee, Gerard Lee, Frank Coughlan, Nuala Kelly


IMDb http://www.imdb.com/title/tt045287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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