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출격 Twelve O'Clock High (1949)

2010.12.04 23:57

DJUNA 조회 수:8259


사이 바틀렛과 바이언 레이 주니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헨리 킹의 [정오의 출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주둔 미8군 아치베리 918연대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영화지만, 화려한 공중전 장면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 전쟁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으니까요. 


영화의 드라마 대부분은 영국의 공군기지에서 일어납니다. 무리한 주간폭력 임무로 폭격기와 대원의 희생이 잦아지자 718 대대의 대대장 키스 데븐포드 대령은 점점 더 반항적이 됩니다. 그가 대원들과 지나치게 가까워 객관성을 잃었다고 판단한 상부에서는 그를 해임하고 그의 친구인 프랭크 새비지 준장을 그 자리에 앉히죠. 상부의 명령이라지만, 이건 새비지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새비지는 데븐포드와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대대내의 인기 따위엔 관심 없고 인정주의나 감상주의는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고 규정을 중시하며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718 대대의 성공률과 생존률은 조금씩 높아지고 이전까지 그에게 반항적이었던 대대원들의 신임도 얻게 되지요.


[정오의 출격]의 주제는 리더쉽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프랭크 새비지의 리더쉽이 무조건 옳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 특정 상황에서 새비지의 방법이 데븐포드의 방법보다 더 나은 결과를 냈다고 말하는 것이죠. 영화의 판단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아직도 리더쉽에 대한 토론의 재료로 자주 채택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이 영화가 그냥 특정 주제를 위한 사례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열린 태도는 예상 외로 강렬한 캐릭터 연구의 일부입니다. [정오의 출격]은 목적을 위해 엄격한 방법론과 태도를 고수하지만 그 과정 중 자기모순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정오의 출격]은 아직도 많은 팬들을 가진 고전이고 그만큼 멋진 영화지만, 드라마로서 완벽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극장용 영화 러닝타임의 한계 때문인지, 새비지와 대대원의 갈등은 조금 단순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레고리 펙의 대표작들 중 하나지만, 전 그가 새비지 역에 잘 맞는 배우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할리우드 스타일로 잘 생긴 얼굴과 단순한 연기 때문에 모순적이고 위험한 인물이어야 할 프랭크 새비지의 캐릭터가 조금 죽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후반에 나오는 공중전에 대해서는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엇갈릴 겁니다. 이 장면은 당시에 나온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미 찍어놓은 다큐멘터리 클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게 별로 없죠. 하지만 그 클립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카메라맨들이 목숨을 걸고 폭격기에서 직접 찍은 진짜 전쟁 장면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더 이상 생생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10/12/04)



기타등등

많이들 [정오의 출격]이라는 국내 제목을 안 좋아하죠. [Twelve O'Clock High]란, 극중에도 대사로 언급되는 것처럼, 그냥 12시 방향이라는 뜻이니까요. 명백한 오역처럼 보이지만 또 누가 알겠습니까. 번역자는 주간폭격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다며 이렇게 지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도 그리 정확한 건 아니지만.


감독: Henry King, 출연: Gregory Peck, Hugh Marlowe, Gary Merrill, Millard Mitchell, Dean Jagger, Robert Arthur, Paul Stewart, John Kellogg, Robert Patten, Lee MacGregor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199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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