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2010)

2010.10.25 11:01

DJUNA 조회 수:11855


몇 년 간 도시에 살다가 다시 부모의 시골집으로 기어들어간 시인 선호는 척 봐도 구제불능의 민폐 룸펜입니다. 영화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저지른 짓이,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일소를 몰래 훔쳐 팔아 여행 경비를 대려는 것이었으니 말 다 했죠. 하지만 일이 꼬이다보니 선호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는 7박8일 동안 소를 트럭에 싣고 전국을 떠돌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7년 전 헤어졌던 여자친구 현수와도 계속 얽히게 되고요.

이 정도면 [워낭소리]의 영향을 의심해볼만 합니다. 하지만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원작을 쓴 김도연이 그 영화의 직접 영향을 받았을 이유는 없죠. 둘은 전혀 다른 태도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워낭소리]가 직설적인 멜로드라마라면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능청스러운 코미디입니다. [워낭소리]가 이미 고정된 관계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그리는 건 소를 끌고 다니면서 스스로에 대해 깨우쳐가는 한 남자의 뒤늦은 성장기입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작은 십우도(十牛圖)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만.

영화는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소를 끌고 다니며 엉겁결에 어설픈 구도의 길에 나서는 남자의 이야기 자체가 어느 정도 현실에서 떨어져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호는 단순히 설정을 넘어 비현실과 환상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냥 꿈이라고 설명하면 간단하겠지만, 그럼 재미가 없죠. 영화가 겹겹으로 깔아놓은 브뉴엘 미로는 조금 섬뜩하기도 하지만 산문적인 현실 세계가 제공하지 못하는 능글맞은 재미가 있습니다.

첫 주연을 맡은 김영필의 연기 매너리즘에는 살짝 연극적인 구석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게 단점이 되지 않습니다. 그의 둔탁하고 느릿한 연기는 공효진의 날카롭고 서늘한 이미지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무엇보다 동물 연기가 좋군요. 주인공 소를 연기한 먹보의 리액션은 웬만한 인간배우들을 뺨칩니다. (10/10/25)

★★★

기타등등
막 장거리 여행을 끝나고 시사회에 간 터라, 영화를 보는 동안 조금 지치긴 하더군요. 그 때문에 트럭에 실려 계속 멀미를 하는 소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긴 했습니다.


감독: 임순례, 출연: 김영필, 공효진, 먹보, 다른 제목: Rolling Home With A Bull

IMDb http://www.imdb.com/title/tt182686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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