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2010)

2010.10.06 10:02

DJUNA 조회 수:12032


1.

밥벌레 동생 둘과 함께 자취방에 살고 있는 만년 고시생 진식에게 정체불명의 소포가 배달됩니다. 상자를 열자 까만 쫄쫄이 옷을 입은 외계인 악당 포인트맨이 나타나 은하연방 론리스타 수명은행과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알리죠. 포인트맨에 의해 자취방과 함께 외계로 납치된 세 남자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포인트맨과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2.

도입부에 나오는 호환마마 비디오와 조악한 비디오 영화 예고편만 보아도 관객들은 이응일의 [불청객]이라는 영화의 전략이 무엇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빈약한 제작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유치찬란함을 과장한 싸구려 영화를 만드는 것이죠. 이응일은 같이 사는 룸메이트 둘을 배우로 캐스팅하고 자기 자취방을 세트로 삼아 감독, 각본, 편집, 촬영, 특수효과를 혼자 해치웠습니다. 이 상황에서 조악함을 과장하고 그를 표현수단으로 삼는 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 수는 있어도 가장 생산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조악함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태생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디씨인사이드에게 바치는 헌사에서도 볼 수 있듯, 영화의 농담은 자연스럽게 체화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싸구려 테이프가 문화생활의 상당부분을 차지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인터넷 세계의 막장스러운 유머와 상상력에 익숙해진 세대의 작품이지요.

 

3.

하지만, [불청객]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처절한 제작환경과 그게 드러나는 처절한 화면, 일부러 집어넣은 어린이용 비디오 영화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기본기가 단단한 장르 영화라는 것입니다. 

 

포인트맨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에게서 하드 SF의 치밀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좋은 [닥터 후] 악당이 될 자격은 있지요. SF적 논리는 썩 그럴싸하고, 감독과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현실 세계에 훌륭한 풍자의 도구를 제공해주며,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주인공들과 포인트맨이 벌이는 사투 역시 예상 외입니다. 어린이 특촬물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는 싸구려 논리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포인트맨은 유치하다기보다는 초현실적인 존재입니다. 물리적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그의 환상적인 존재감은 오히려 루이스 캐롤과 아서 C.  클라크의 고안품에 가까워요. [불청객]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하드 SF의 대가 클라크를 끄집어내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있겠는데, 이 영화는 은근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반부와 비교할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수효과도 보기만큼 싸구려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반에 잠시 등장하는 제로 g의 묘사는 트릭이 다 보이는 소박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특수효과의 기술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이 그 효과를 통해 무슨 그림을 그릴 것인지, 그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느냐는 거죠.

  

4.

저는 이 영화를 필름 포럼의 두 번째 상영 때 보았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영화 잡지 인터뷰를 위장한 가짜 소개 영상을 틀어주었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팡파레와 함께 감독이 등장해 인사를 하더군요. 영화제나 다른 시사회 때에는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하여간 이런 개인적 터치는 귀여웠어요. (10/10/06)



기타등등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배우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5년 전 찍은 영화라던데. 


감독: 이응일 , 출연: 김진식, 원강영, 이응일, 다른 제목: The Uninvite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Uninvited_-_2010.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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