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 카인드 The Fourth Kind (2009)

2010.02.21 22:09

DJUNA 조회 수:8570

 

전 UFO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장르의 가장 큰 매력은, SF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환상적인 사건을 사실이라고 진지하게 우긴다는 것이죠. 이 장르의 대표작들인 [커뮤니온 Communion], [로스웰의 비밀 Roswell], [인트루더스 Intruders](제가 가장 좋아하는 UFO 영화입니다)와 같은 작품들에서 "이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라는 허풍을 뺀다면 뭐가 남겠습니까?

 

[포스 카인드]도 장르의 전통에 따라 허풍을 치고 있습니다. 단지 이 영화의 허풍은 앞에 만들어진 영화들과 종류가 조금 다릅니다. 위에 언급한 UFO 영화들은 모두 UFO 사건을 직접 겪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정말 하지만 [포스 카인드]는 어느 기준으로 봐도 실화가 아닙니다. 실화라고 뻥을 치고 있는 허구죠.

 

어떤 형식인지 말씀드리죠. 영화의 도입부는 주연배우 밀라 요보비치의 나레이션입니다. 요보비치는 자신이 배우 요보비치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우리가 볼 영화는 자신이 앞으로 연기할 애비게일 타일러라는 심리학자가 직접 겪은 실화를 각색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뒤 영화는 실제 애비게일 타일러와 이 영화를 감독한 올라툰드 오순산미(제가 이름을 제대로 적은 것인지요?)의 비디오 인터뷰를 중간중간에 넣으면서 그 사건을 드라마로 옮깁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트릭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을 때, 연출된 장면과 그 '원본'이 된 '실제 클립'을 분할화면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죠. 몇몇 섬뜩한 장면은 처음부터 각색을 포기하고 원본만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럼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음,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진부한 외계인 납치담입니다. 알래스카의 노엄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됩니다. 애비게일 타일러는 마을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하얀 부엉이와 관련된 수상쩍은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시도한 최면요법은 환자들을 끔찍한 고통과 사고로 몰고가고, 타일러는 그녀를 포함한 노엄의 모든 사람들이 외계인들의 실험 대상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음, 증거야 많죠. 네티즌 수사대에 따르면 알래스카엔 애비게일 타일러라는 심리학자가 없다고 합니다. 노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이상한 현상이 보고된 적은 없으며 원인이 의심스러운 사건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상황도 수상쩍지 않습니까? 일단 아무리 타일러가 절박해도 환자와 관련된 그런 자료를 멋대로 공개해도 되는 건가요? 그리고 왜 그런 고백을 버드 홉킨스가 아닌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합니까? 그리고 중반 이후에 나와서 의미심장한 주장을 하는 수메르어 전문가 말인데, 왜 그 사람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하는 거죠? 수메르어를 할 줄 아는 학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들 중 외계인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담을 묻어두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예술적인 면을 보더라도, 영화는 별로 실화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까 전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진부하다고 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세계의 진부함은 허구의 진부함과는 많이 다르고, 영화는 현실세계의 진부함만큼이나 허구의 진부함에도 빠져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의미심장함이 통속적으로 과장되어 있지요. 만약 진짜 외계인들이 영화 속에 나오는 몇몇 일들을 실제로 저질렀다면 그들은 그 뒤로 두고두고 동료들의 놀림을 받을 것입니다.

 

이 자명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포스 카인드]가 형편없는 영화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 뻥들을 실화라고 우긴 마케팅 전략은 비판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 상당수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마케팅에 속아 넘어간 것에 대한 분노나 그런 속 보이는 시도에 대한 짜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모큐멘터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보면, [포스 카인드]에는 건질 게 꽤 많습니다. 진짜라고 우기는 가짜 클립들을 드라마 사이에 삽입해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법은 정말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건 가짜라는 걸 알고 봐도 분위기가 그럴싸하고 무섭습니다. 유튜브에 떠도는 귀신 동영상들처럼요. 밀라 요보비치나, 윌 패튼, 일라이어스 코티스와 같은 배우들도 기본기가 탄탄한 장르 연기를 보여주고요. 그리고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애비게일 타일러를 연기한 재현배우는 외모가 정말 그럴싸했습니다. 어느 정도 분장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타일러의 첫 등장은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10/02/10)

 

★★☆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음악 대신 실제 UFO 목격자들의 목격담들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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