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2010)

2010.08.11 11:06

DJUNA 조회 수:15170


전 [폐가] 이전에 [블레어 윗치]식 모큐멘터리를 표방한 국내 영화를 두 편 보았습니다. [목두기 비디오]와 [인비져블 2 : 귀신소리찾기]죠. 모두 재미있는 영화들이었습니다. 야심은 크지 않았고 설정의 인위성은 노골적이었지만, 호러와 모큐멘터리 장르 모두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귀신들은 무서웠죠. 제가 [폐가]에 기대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적중률이 비교적 높은 서브 장르였던 겁니다. 하지만 겨우 두 편을 보고 일반화를 시키는 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요. [폐가]를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폐가]는 앞의 두 영화들처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따릅니다. 폐가 탐방 동호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던 사람들이 신비로운 상황 속에서 실종되었는데, 나중에 현장에서 그들이 찍은 테이프가 발견되었고, 이를 디지털로 복원해 내놓았다는 거죠. 


시작부터 첫 번째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과연 [폐가]가 다른 [블레어 윗치]식 호러 영화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내놓은 건 뭔가요? [REC], [클로버필드], [파라노말 액티비티], [목두기 비디오], [인비져블 2 : 귀신소리찾기]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자기만의 게임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좀비나 괴물로 소재를 넓히기도 했고, 멜로드라마나 미스터리를 강화하기도 했으며, 반복되는 고정된 카메라 영상으로 형식에 변화를 주기도 했죠. 하지만 [폐가]에서는 오로지 귀신들린 집에서 카메라를 흔드는 것 이외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이디어가 아니죠. 장르란 말입니다. 


이러니 시작부터 난처해집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90분 가까이 되는데, 그 시간을 채울 게 없는 거죠. 폐가의 사연이 소개되고 다큐멘터리 팀과 폐가 탐사 동호회의 멤버들이 소개되면 영화는 하는 일 없이 방황합니다. 원래 이런 영화에서는 호러가 터지는 막판 30분보다 그 부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스펜스를 쌓는 중반부가 진짜로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냥 그 소중한 시간을 폐가 안에서 카메라를 휘두르며 낭비합니다. 무척 어지럽긴 한데, 그게 서스펜스나 공포로 연결되지는 않아요.


영화에서 조금 눈에 뜨이는 것은 이런 식의 케이블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노출시키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들이 편집으로 잘라내고 보여주지 않는 인위적인 연출과 연기가 그냥 드러나지요. 몇 분 동안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들은 점점 누적되면서 호러 모큐멘터리 장르에 심각한 해를 끼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무서운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카메라도 따라 들어가거나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지요. 그럼 이 상황은 연출된 것인가요? 주인공은 정말 혼자인 겁니까? 어디서부터 우리가 무서워해야 하는 거죠?


작정하고 호러가 되려 기를 쓰는 중반 이후 형식은 점점 심각하게 파괴됩니다. 사실 첫 번째 귀신이 나오는  초반부에도 그 흔적이 보였어요. 귀신이라고 나오는 게 CG로 특수효과 장난질을 친 것임이 너무나도 분명했단 말입니다. 그 이후 테이프가 손상된 결과라고 덧입힌 지직거림 역시 설득력이 없어서 마치 납량 특집 버라이어티 쇼 예고편처럼 보였어요. 후반에 이르면 이런 CG는 점점 노골적이 되고 심지어 편집과 카메라 조작을 동원한 관습적 호러 효과까지 동원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카메라만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을 뿐 더 이상 모큐멘터리가 아닌 거죠. 물론 전혀 안 무섭습니다. 차라리 정통 호러 영화라면 받아들였을 텐데, 이건 카메라 앞뒤에서 장난치는 게 작정하고 노골적이니.


실제 폐가를 이용한 영화의 무대는 좋습니다. 배우들 역시 열심히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들의 존재감이나 노력은 영화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카메라는 폐가의 내부를 제대로 이용하는 대신 그저 몸을 흔들고 있을 뿐이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속이 빤히 보일 정도로 전형적이거든요. 아무리 속고 싶어도 속을 만한 게 없어요. 그러면서 영화는 징그럽게 깁니다. 90분 안쪽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길게 느껴져요. 보다보면 [목두기 비디오]나 [인비져블 2 : 귀신소리찾기]의 겸손이 그리워집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간단합니다. 호러 모큐멘터리가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해도, 관객들은 영화가 그 게임에 진지하길 바란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를 통해 보여줄 이야기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먼저 검토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아무리 자신이 없다고 해도 그 규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기다리는 건 카오스밖에 없어요. (10/08/11) 



기타등등

송병준이 호스트로 나온 케이블 시리즈 [위험한 동영상 SIGN]도 이 장르 안에 넣을 수 있겠군요.


감독: 이철하, 출연: 신경선, 전인걸, 윤이나, 이화정, 현태호, 신소율, 다른 제목: Deserted Hous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Deserted_Hous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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