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 2 Sex and the City 2 (2010)

2010.07.04 23:37

DJUNA 조회 수:13026



[섹스 앤 더 시티 2]를 종영된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떼어내어 독립된 영화로 보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이 영화는 홀로그램 조각처럼 1998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진, 캐리 브래드쇼를 중심으로 한 소우주의 과거를 모두 담고 있어요. 아무리 감독과 작가들이 어쩌다 실수로 극장을 찾은 일반 관객들을 배려한다고 해도,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오리지널 텔레비전 시리즈의 팬들일 것이고, 그들 역시 이 작품을 그 연장선에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섹스 앤 더 시티 2]를 옹호하는 논리로 먹힐 수 있을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전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의 팬들과 일반 관객들이 다른 영화를 보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은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다른 두 영화들은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단지 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을 뿐이죠. 어쩌겠습니까. 팬들이란 그런 사람들인 것을.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시즌을 압축한 것 같았던 전편과는 달리 [섹스 앤 더 시티 2]는 보다 독립적인 영화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커버하는 시간대가 조금 짧지요. 영화가 시작되면 캐리는 권태기에 빠지고, 미란다는 직장을 그만두고, 샬롯은 남편이 섹시한 유모에게 넘어갈까봐 걱정합니다. 사만다는... 사만다고요. 갈등이 터지기 직전에 이들은 아부다비로 여행을 갑니다. 사만다가 수퍼스타가 된 스미스 제로드를 통해 공짜 여행 초대를 받은 거죠.


이 아이디어를 작가들이 좋아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들은 무대를 바꾸면 뭔가 신선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랍 에미리트 공화국을 무대로 삼는다면 뉴욕 여자들의 자유분방함과 아랍 문화의 보수성을 충돌시키는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굉장히 안 좋습니다. 저번 [섹스 앤 더 시티]는 미방영된 시즌처럼 보였습니다. 원래 시즌보다는 가벼웠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처럼 보였죠. 조금만 관대해진다면 그 작품을 진짜 시즌 피날레로 볼 수도 있었어요. 캐리와 빅은 거기서 결혼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 2]는 종영된 지 한 10여 년 쯤 뒤에 방영되는 TV 스페셜처럼 보입니다. 익숙한 캐릭터들의 여행 설정이란 게 그렇게 닳디 닳고 위험한 것이라고요. 빙 크로스비와 밥 호프처럼 원래부터 여행하는 애들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 결과는 대부분 처참할 정도로 나쁩니다. 원래부터 사치가 쩔었던 주인공들이었지만, 이번엔 도가 심했습니다. 뉴욕에 있었을 때 이들은 토박이의 여유를 즐기면서 사치를 드라마 안에 반영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부다비에 도착해 공짜 사치가 주어지자, 이 사람들의 머리는 그냥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깃발 든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 관광객들을 보는 거 같아요. 익숙한 세계에서 격리되자 [섹스 앤 더 시티] 드라마를 지탱하던 고민-각성-문제해결의 과정도 얄팍해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이들이 일상과 상호작용을 할 기회가 날아가버리니까요. 고로 사전 지식 없는 일반 관객들은 중반쯤에 영화를 포기하게 됩니다. 영화가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보여주는 것은 생각 없는 중년의 미국 여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면서 아부다비 관광하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시리즈 팬들의 입장에서도 이 영화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쌓아온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들의 민폐소동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겠지만, [섹스 앤 더 시티 2]의 드라마는 시리즈의 일부이기 때문에 더 실망스럽습니다. 생각해보시죠. 우린 캐리 브래드쇼를 1998년에 만났습니다. 10년 넘게 알고 지냈다고요. 그 동안 캐리 브래드쇼는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들었고 결혼도 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캐리도 좀 성장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원래 캐리는 그런 거 할 줄 모르는 여자라고요? 네,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캐리와 빅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캐리가 하는 짓은 아무리 관대하게 보려고해도 50대 남자랑 결혼한 40대 여자가 할 일이 아니에요. 20대 초반이라면 애가 어리다고 이해는 하죠.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은 여자가 이러는 걸 보면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캐리야 처음부터 포기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별로 낫지는 않습니다. 우선 전 사만다의 성생활을 구경하는 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이 사람의 자유분방함에는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10여년 동안 같은 소동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왜 저 사람은 다른 오락을 찾지 못하나, 상상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듭니다. 후반에 이 사람이 저지르는 소동은 그냥 민망할 뿐이고요. 그나마 책임감 있는 성인의 삶을 살고 있는 미란다나 샬롯은 조금 낫지만 그래도 많이 낫지는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 드라마는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싹뚝 잘라버렸으니까요.


영화의 스타일로 자리잡은 패션과 사치는 점점 쇠락하는 느낌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드라마가 시작된 1998년에 갇혀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들의 사치는 과시성과 호사스러움이 지나쳐서 피곤할 뿐이고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취향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모색할 생각을 안 해 봤던 걸까요? 더 이상 모험을 할 나이가 아니라 생각하고 그냥 하던 걸 계속 하는 걸까요?


앞으로 [섹스 앤 더 시티]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전 한 편 정도만 더 나왔으면 합니다. 팬까지는 아니라도 해도, 시리즈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저에게 2편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종지부입니다. 이를 커버할 조금 나은 영화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니겠죠. 사실 대부분의 팬들이 그럴 겁니다. (10/05/30)   


★☆


기타등등

1. 샬롯의 딸 릴리 역을 맡은 배우가 혹시 교체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했는데, 계속 나오더군요. 근데 배우가 쌍둥이였네요. 전에도 알았던가?


2. 세상에 살다살다 미스터 빅을 옹호하게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이 50이 되면 그냥 집에 죽치고 앉아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외출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왜 캐리는 그것이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대죄라고 생각하는 거죠!


감독: Michael Patrick King, 출연: Sarah Jessica Parker, Kristin Davis, Cynthia Nixon, Kim Cattrall, John Corbett, Chris Noth


IMDb http://www.imdb.com/title/tt126194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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