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하이네켄은 이름만으로 존재가 설명되는 인물이죠. 하이네켄 맥주회사의 회장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수용 맥주를 생산하던 가족회사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인물이라죠. 이 사람 이야기는 나름 파란만장한데,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1983년에 일어났던 유괴사건입니다. 몸값을 노린 아마추어 범죄자들이 그와 운전사를 납치해서 3주 동안 감금해놓고 3천5백만 길더를 뜯어가는데 성공했지요. 이들은 모두 나중에 체포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도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라, 한 명은 탈옥에 성공해서 파라과이로 달아났고, 다른 두 명은 프랑스로 달아났다가 범인인도조약의 허점 때문에 3년 동안 네덜란드로 데려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다들 죄값을 치르긴 했답니다.

영화 [하이네켄 유괴사건]은 기본적으로 이 사건을 다룬 논픽션인 페터 R. 드 브리스의 책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허구가 많이 섞였다고 합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범죄를 구상하고 하이네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물인 렘은 허구의 인물인 게 맞습니다. 아마 렘의 아버지가 하이네켄 회사의 영업부에서 일하다가 일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걸려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허구이겠죠.

하이네켄 유괴사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외국인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의 전개과정은 억만장자가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 내용의 일반 범죄 논픽션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으니까요. 납치범들이 특별히 영리했던 것도 아니고, 범죄자들과 하이네켄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던 것도 아닙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면 다들 아는 실화이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죠. 척 봐도 내수용 영화입니다.

영화의 구성은 조금 산만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합니다. 드라마의 논리를 생각해보면 살짝 괴상하기도 하고요. 일단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범죄자들에게 할애하고 있습니다. 전 이게 그리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지는 않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의 범죄는 그리 독창적인 편이 아니고, 영화 속에서 그려진 인물들도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빼면 그냥 지루한 남자들이거든요. 하이네켄에 대한 렘의 복수심 때문에, 이 사건을 일종의 계급 갈등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묘사가 너무 단순하고 짧습니다.

재미만 따진다면, 영화의 후반부가 낫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유괴범에서 하이네켄으로 옮겨지는데, 그는 그를 납치했던 남자들보다 더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생각도 깊고 복잡하며 더 영리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자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앞의 유괴사건과는 달리 범인인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야기의 방향과 끝을 예측하기 힘들어서 관객들의 시선을 더 끌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하이네켄을 연기하는 루트거 하우어의 무시 못할 존재감이 있습니다. 단지 이 모든 걸 고려한다고 해도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가 이렇게 길어진 건 어색해보이죠.

전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프레디 하이네켄이 주인공이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범죄 전체를 커버한다는 계획을 따른다면 유괴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관점을 넣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고요. 이 영화를 통해 유명한 범죄사건에 대해 꽤 자세히 알게 되었으니 손해본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정보는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하는 게 더 좋지요. (12/08/18) 

★★☆

기타등등
부천영화제 상영작이지만 전 압구정 CGV에서 하는 피판 로드쇼에서 봤습니다. 이 영화들은 어떻게 선정된 건지 모르겠어요. 

감독: Maarten Treurniet, 출연: Rutger Hauer, Marcel Hensema, Sallie Harmsen, Gijs Naber, Reinout Scholten van Aschat, Ton Kas, Teun Kuilboer, Porgy Franssen, Korneel Evers,  다른 제목: The Heineken Kidnapp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184652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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