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을 보았습니다. 프리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지요. 전작인 [그린델왈드의 범죄] 내용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귀찮아서 복습은 안 했습니다. 보다 보니 대충 기억이 나더라고요. 엔드 크레디트를 보니 저번 두 편과는 달리 스티븐 클로브스가 J.K. 롤링의 각본을 좀 손 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마법 세계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 이야기거든요. 이 동네도 정치판은 더러워서 선거판의 음모 속에서 그린델왈드는 풀려나고 이미 두 후보가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대선에 세 번째 후보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려고 음모를 꾸며요.

이는 분명 트럼프 시대에 대한 풍자물로 쓰였을 것입니다. 중반의 음모가 1930년대 베를린에서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좋은 풍자가 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일단 영화가 기린(아프리카의 목 긴 동물 말고 중국 전설 속 상상의 동물)을 다루는 방식부터가 그렇지요.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를 그리면서 올바른 지도자를 고를 수 있는 동물을 등장시킨다면 이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겠어요?

영화의 각본은 심심한 편입니다. 142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엔 많이 빈약해요. 그 자리를 채운 것이 다양한 시각효과를 넣은 스펙터클입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이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데, 이건 좀 위험신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는 2편에서 벌인 일을 대충 수습하는데, 더 거창하게 벌일 수 있는 일을 허겁지겁 수습하는 거 같은 그림입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린 것 같았던 [해리 포터] 때와는 달리, 사전 계획이 빈약했거나 원래의 계획을 수정한 것 같습니다.

전 지금까지 제목의 덤블도어, 시리즈의 주인공, 아니, 주인공이어야 할 뉴트 스캐맨더, 팀의 유일한 머글인 제이콥 코왈스키, 저번 편에 나름 심각하게 등장한 크레덴스 베어본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들이 수상쩍을 정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들의 캐릭터와 그렇게 밀접하게 엮여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티나 골드스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 자리를 랠리 힉스라는 캐릭터가 대신 차지해도 별 차이점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코왈스키 말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그 사람의 미덕을 칭찬하게 하는 대신 그걸 그냥 직접 보여주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쁜 의미로 칭찬의 감옥에 갇힌 사람을 보는 기분입니다. 뉴트 스캐맨더를 주인공 대접하지 않는 이상한 태도에 대해서는 이미 불평을 했을 테니 넘어가겠습니다.

덤블도어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도대체 뭐가 비밀이죠? 덤블도어의 성적 지향성이나 크레덴스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지 않았나요? 성적 지향성으로 제한한다면, 그 긴 세월 동안 묻어두었다가 프리퀄에서 슬래시 팬픽 쓰듯 풀어내는 방식, 심지어 중국에 팔아먹으려고 알아서 자체검열하는 태도 모두가 치사하고 비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2/04/13)

★★☆

기타등등
이번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4,5편은 안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모두 자기가 옛날 옛적에 만든 캐릭터들을 엮느라 진짜 주인공을 홀대한 롤링 때문입니다.


감독: David Yates, 배우: Eddie Redmayne, Jude Law, Ezra Miller, Dan Fogler, Alison Sudol, Callum Turner, Jessica Williams, Katherine Waterston, Mads Mikkelsen

IMDb https://www.imdb.com/title/tt412343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6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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