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2012)

2013.05.09 16:47

DJUNA 조회 수:11719


하경은 15년 전에 사랑하는 딸을 유괴사건으로 잃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며칠 전, 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청호는 아이가 죽은 현장에서 한 송이 꽃을 발견합니다. 범인이 이 꽃을 남겼다고 확신한 그는 CCTV와 당시 현장을 지나쳤던 블랙박스들을 총동원해서 범인을 추적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놓쳐버립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아, 또다른 유괴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은 범죄 방법에서부터 몸값에 이르기까지 15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똑같아요. 단지 이 사건에서는 새로운 단서들이 뜻밖의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 관련 행사에서 대부분 그러하듯, [몽타주] 언론시사회에서는 참석한 기자들에게 영화의 스포일러를 드러내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도 그 요청을 따르려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은폐 자체가 가능할까요? 이 영화의 반전을 숨기려면 시놉시스 자체를 감추고 예고편도 틀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하지 말아야했고요. 전 이런 영화는 될 수 있는 한 사전 정보 없이 보는 편이라 사건의 진상을 확신하는 데에 한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놉시스를 꼼꼼하게 읽고 간 장르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전 장르팬들의 눈치를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상을 맞히기는 굉장히 쉽습니다. 설정과 캐스팅이 영화를 한 방향으로만 유도하니까요.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인물이 스토리 안에서... 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려나? 하지만 뻔한 게 아닙니까. 

이러니 초반 몇십분 동안은 긴장감도 있고 스피디했던 영화가 본론에 들어가면 갑자기 힘과 속도 모두를 잃어버립니다. 관객들이 진상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호기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때부터는 주인공과 경찰들의 헛발질에 짜증이 나는 것이죠. 

시사회에서 이게 가장 노골적이었던 부분은 김상경이 국과수 출신 음향전문가 기주봉으로부터 증거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이었는데, 주변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의 합창수준이었습니다. 놀라서가 아니라, 다들 눈치채고 있는 진상을 느릿느릿하고 비능률적으로 설명하는 전문가와 그것도 제대로 못 알아들어 버벅거리는 주인공이 갑갑해서였죠.

이런 이야기 구조에서 관객들이 진상을 일찍 알아차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반전'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기 위해 극중 인물들이 아주 이상하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입니다. 대한민국 장르 영화에서 멍청하고 무능력한 형사들은 흔해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형사들은 충분히 볼 수 있는 단서들을 일부러 지나치거나 척 봐도 말이 안 되는 음모에 친절하게 말려들어 음모가에게 무료 봉사합니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해도 나올 진상을 무시하는 매스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고요. 음모에 말려든 또다른 인물의 심리도 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냥 주어진 각본을 꺼내 대사를 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각본은 정말 괴상하기 짝이 없어요. 결말의 봉합도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하고요.

배우들은 모두 장르와 역할에 최적화된 사람들입니다(딸을 잃은 엄마 역의 엄정화, 미해결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인 김상경...) 하지만 나쁜 대사와 이상한 심리묘사, 과장된 멜로드라마 때문에 배우들은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관객들을 자극하는 힘은 대부분 설정의 디폴트 값에서 나오죠. 여러분은 엄정화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굳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몽타주]의 홍보팀은 이 영화를 [살인의 추억]과 비교하려고 하던데 그건 좀 무리한 시도 같습니다. 소재에 대한 선정적인 접근과 무리한 스토리 전개는 [살인의 추억]보다는 [내가 살인범이다]에 가까워요. 어떻게 보아도 그렇게 영리하다고 할 수 없는 반전에 집착하는 대신 정공법을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13/05/09)

★★

기타등등
영화 제목 [몽타주]는 범인의 몽타주를 의미하기도 하고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중의성을 고려했대요. 전자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몽타주는 별 의미가 없는 소도구에 불과하니까요. 중간에 조금 재미있는 교차편집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후자도 어울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그 장면은 나온지 몇 분만에 트릭을 자진 폭로해요. 의미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감독이 생각하는 것만큼 독점적으로 영화적이지도 않습니다(이미 몇몇 추리소설의 고전이 이 서술구조를 훨씬 야무지게 써먹었죠.) 그리고 몽타주 기법을 썼다고 제목이 [몽타주]라는 게 말이 됩니까. 특수효과를 쓴 장면이 몇 개 나온다고 [죠스]의 제목을 [특수효과]라고 고쳐야 할까요.

감독: 정근섭, 배우: 엄정화, 김상경, 송영창, 조희봉, 유승목, 정해균, 박철민, 기주봉, 김성경, 다른 제목: Montag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Montag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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