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칼이 온다 (2012)

2012.11.09 23:31

DJUNA 조회 수:10886


[자칼이 온다]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배형준이 오래간만에 만든 코미디입니다. 전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귀여워 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 수준만 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송지효의 경력이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시놉시스를 읽으니 엉뚱한 여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남자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지요. 이 정도 반복이면 감독이 지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장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정도는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 허망하기 짝이 없는 기대였지만.

제목의 자칼은 킬러입니다. 수많은 유명인사를 사고로 위장해서 죽인 경력이 있다는데, 그게 다 자칼의 짓이라는 게 밝혀졌다니, 굳이 수고스럽게 사고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자칼이 마지막 은퇴 살인을 할 거라는 첩보가 있어서 경찰이 예고된 지역의 호텔로 모여듭니다. 하지만 근처에 막 모텔에서 호텔로 승격된 곳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된 신팀장 일행은 동네 경찰서의 마반장과 유순경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한류스타 최현이 안젤라라는 스폰서와 밀회를 위해 와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자칭 청부살인업자라는 봉민정이라는 여자가 최현을 결박합니다.

뭔가 굉장히 복잡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결말까지 가면 더 복잡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복잡한 플롯이라는 말만 듣고 이 영화가 영리한 작품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이 영화의 복잡함은 통제된 복잡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반전도 있고 복선도 있고 숨겨진 메시지도 있지만 통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헉헉거리는 게 보입니다. 이런 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최종 반전이 벗겨지는 후반이지요. 여기서는 더 이상 캐릭터도, 이야기도 없어요. 폭발의 파편을 뒤집어 쓰고 "놀랐지?"하고 으스대는 바보들뿐이죠.

코미디는요? 송지효가 연기한 봉민정과 김재중이 연기한 최현의 대결에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깔려 있습니다. 이걸 발전시키면 뭔가 나올 것도 같긴 해요.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습니다. 캐릭터의 매력이요. 특히 최현은 왜 주인공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비호감이고 불쾌하고 인간적인 감정이나 양심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킬러치고는 어리버리한 봉민정은 상대적으로 귀엽지만 몇 번 반전을 거치면 이 캐릭터도 파탄을 맞아요. 경찰들, 호텔 직원들, 기타 등등 인물들도 대부분 불쾌하고 짜증나는 인물들이고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나름 머리가 도는 동네 경찰서의 유순경 정도.

나머지 농담들은 등장인물들을 장기말처럼 늘어놓고 이들을 어떻게 하면 유치하고 저열한 상태로 유지시키냐를 경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놓고서 그게 미안한지 가끔 변명도 하는데, 그게 먹히기엔 이미 상태가 아주 나빠져 버렸습니다. 정작 이렇게 이야기와 캐릭터를 험하게 굴려도 나올 코미디가 많지 않고요. 그렇다고 진짜 작정하고 바닥을 쳐주느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게다가 실제로 사람이 죽고 피가 튀기 시작할 때는 "이 사람들이 정신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봐도 코미디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막장까지 갈 능력은 없고 그냥 기분나쁘고 야비하기만 하달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송지효의 배우 경력이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송지효의 대표작은 여전히 [런닝맨]이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직 이를 능가할 만한 작품이 안 나옵니다. [자칼이 온다]는 [런닝맨]에서 볼 수 있는 송지효의 밝은 매력을 보여주려 시도하지만 처참하게 실패합니다. [닥터 진]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김재중에는 배우로서의 매력이나 실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팬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몰라도 늘 무대분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외모부터가 신경이 쓰이더군요. 오달수, 김성령, 김용건과 같은 베테랑 배우들도 여기서는 그냥 기능성 도구일뿐입니다. 그것도 그리 재미가 없는.

슬슬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배형준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의심이 듭니다. 아마 그 영화는 김하늘과 강동원의 개인적 매력과 최희대와 박연선의 각본의 힘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이 파탄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요. 암만 주의깊게 들여다봐도 이 영화에는 정상적인 판단력의 흔적이 안 보입니다. (12/11/09)

★☆

기타등등
김재중은 배우로서는 별로지만 사생팬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짜증에는 진심이 보입니다.

감독: 배형준, 출연: 송지효, 김재중, 오달수, 한상진, 김성령, 서아인, 김용건, 주민하, 라미란, 신동미, 다른 제목: Jackal is Coming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Jackal_is_Coming.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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