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련화 Gu lian hua (2005)

2012.11.17 17:00

DJUNA 조회 수:7505


대만작가 백선용의 단편집 [타이페이 사람들]에는 술집 호스티스들이 주인공인 [고련화]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대만의 CTS에서는 2005년에 이를 원작으로 1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들었어요. 그 시리즈가 히트하자 이걸 다시 재편집해서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고요. 전 이 과정이 참 궁금합니다. 단편 하나가 미니 시리즈가 되고 그것이 다시 극장용으로 줄어들려면 어떤 확장과 축소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영화는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후퇴하던 1949년에 시작합니다. 이심결이 연기하는 우바오는 산랑이라는 남자와 함께 대만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마음의 동요를 보이던 우바오는 배에서 내려 어딘가로 가는데, 그곳은 원영의가 연기하는 윈팡의 집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1958년 대만으로 건너 뛰어, 술집 호스티스 일을 하며 홀로 살아가는 윈팡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윈팡은 같은 술집에서 일하는 어린 가수인 진줸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 아가씨를 보다보면 자꾸 옛 애인인 우바오의 모습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40년대의 상하이와 50년대의 타이페이를 번갈아 오가면서 진행됩니다.

아마 대부분의 원영의 팬들은 이 사람이 언젠가 제대로 된 퀴어 역할을 한 번 할 거라고 기대했을 겁니다. 그게 현실화된 것이 바로 [고련화]죠. 단지 예상과는 달리 원영의의 역할은 고풍스럽고 여성적이며 억압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중국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인데 동성애자인 거죠.

윈팡의 로맨스는 모두 남자들이 한 명씩 끼어있는 삼각관계입니다. 우바오는 윈팡과 부유한 작곡가인 리우산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줸은 굉장히 형편없는 인간인 조직 폭력배에게 끌려가 끔찍한 대접을 받다가 결국 마약 중독자가 됩니다. 윈팡은 두 여자들에게 모두 최선을 다하지만 이 남자들의 침략 속에서 늘 위축되어 있습니다. 윈팡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주고 주고 또 주는 것이죠. 가끔 성취하는 작은 승리도 곧 세상의 편견과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버립니다.

분명 원작소설보다는 몇 배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영화일 거고, 내용상 빠지는 부분도 없지만, 그래도 영화는 다이제스트처럼 보입니다. 미니 시리즈의 화법이 극장용 영화의 화법으로 변형되는 과정 중 발생하는 갭 때문이겠죠. 특히 전 40년대 상하이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싶었는데... 결말도 중간에서 끊긴 것 같아서 조금 갑갑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가진 고아한 매력을 즐기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배우들의 화학반응도 좋아서 남아있는 로맨스의 힘도 상당한 편이고요. 그리고 정말 이 이야기를 16부작 짜리로 봤다면, 저 같은 사람은 중간에 복장이 터졌을 수도 있었겠어요.  (12/11/17)

★★★

기타등등
백선용의 원작은 80년대에 한 번 번역된 모양인데, 지금은 절판되었다고 하더군요. 도서관을 뒤져봐야겠습니다.

감독: Jui-Yuan Tsao, 배우: Anita Yuen, Angelica Lee, Shu-shen Hsiao, Chung-Hua Tou, Jack Kao,  다른 제목: Love's Lone Flower

IMDb http://www.imdb.com/title/tt048565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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