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2013)

2013.08.01 02:00

DJUNA 조회 수:20890


허정의 [숨바꼭질]에 테마를 제공한 것은 몇 년 전 인터넷에 떠돌던 괴담입니다. 집마다 초인종 밑에 수상쩍은 낙서가 있는데, 이게 모두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표식이란 거죠. 전 '초인종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보도자료에서는 '숨바꼭질 괴담'으로 부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영화는 여기에 주인 몰래 남의 집에 숨어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해 하나로 묶었는데, 이 둘은 원래부터 연결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영화의 주인공은 일산에 있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성수입니다. 그는 오래 전에 인연을 끊은 형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거기서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합니다. 이웃에 사는 주희는 그 형이라는 사람이 자기 딸을 훔쳐보고 있다고 주장하고요. 집에 돌아온 그는 마치 감염된 것처럼 자기집 초인종 옆에 똑같은 암호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숨바꼭질]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적절하게 엮어서 시치미 뚝 떼고 엄청난 걸작인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기도 쉽거든요. 전체적인 설정과 주제만 그런 게 아니라 개별 액션도 그래요. 여러분도 사회 밑바닥에서 실종된 룸펜 형이 언젠가 찾아와 자신의 완벽한 중상계급의 삶을 박살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가장의 이야기를 보면 마구 할 말이 많아질 겁니다. 영화 후반에 나오는 반전 이후에는 더더욱 그럴 거고요. 

스릴러로서 [숨바꼭질]은 장점이 꽤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관객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를 정확하게 잡았어요. 일반 관객들에게 자기 집 안에 침입한 타자처럼 현실적으로 무서운 존재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이를 위해 만들어낸 악당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저지르는 짓도 무섭지만 그 행위로 이끄는 광기도 무섭지요. 서스펜스와 호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바꼭질]은 성공한 영화가 아닙니다. 온갖 좋은 재료들을 긁어모았고 실력있는 성실한 배우들을 제대로 캐스팅했지만 마땅히 도달해야 할 지점에는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았어요.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리듬감과 페이스의 실패입니다.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는 산만하기 그지 없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제대로 리듬을 탈 수가 없는 겁니다. 숨바꼭질 이야기와 초인종 괴담의 연결도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해서 두 개의 이야기 사이를 오갈 때마다 덜컹거리고요. 

게다가 드라마와 액션의 흐름이 대부분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흐르려면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행동논리를 무리없이 따라가야 하죠.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생각과 행동이 아주 이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희가 아빠 따라 자기네 동네에 왔다가 위험에 빠진 성수의 아이들을 구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엉뚱하게도 주희는 그 다음에 성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성수네 가족과 주희를 엮어주려는 필요성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대한 설명없이 그냥 다음 장면으로 건너 뛴 겁니다. 

이런 게 하나나 둘만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거의 모든 장면마다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전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그건 대부분 "왜 저 사람은 ( )를 먼저하지 않지?" 또는 "저 사람은 왜 지금 저러고 있지?"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런 식이죠. "왜 저 사람은 경찰에 전화를 걸지 않지?", "왜 저 사람은 가족을 먼저 구하지 않지?", "왜 저 악당은 지금 주인공을 죽이지 않지?" 거의 모든 액션 장면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일산에 사는 가족이 위험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린 주인공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인천에서 직접 차를 타고 달려온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먼저 가족에게 알렸다고 해도요. 

이러니 캐릭터들은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기본설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정을 완성하는 행동의 내적 논리가 없지요. 재료들이 그냥 부서진 채 자루 안에 담겨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들 중 호감이 가거나 감정이입이 가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모두 그 부서진 상태에서 지독하게 짜증나거나 지독하게 편협하거나, 지독하게 바보입니다. 전 이 영화의 악당이 어린아이 둘을 포함한 일가족들을 몰살했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거예요.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그랬어요. 그 때문에 거의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그나마 악당이 견딜만한 쪽이었으니 말 다했죠. 

보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허정의 전작인 [저주의 기간]은 훌륭한 호러 단편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도 좋은 재료들이 엄청 많았지요. 충분히 멋진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무너졌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 전 배우들의 격찬을 받은 각본에 시작부터 문제가 있지 않았나 의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논리적인 행동만으로 가득 차 있는 스토리가 현장의 문제점 때문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13/08/01)

★★

기타등등
이 영화 끝에 나오는 올빼미 비유는 혹시 뻐꾸기를 잘못 말한 게 아닙니까? 


감독: 허정, 배우: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 다른 제목: Hide and Seek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Hide_and_Seek.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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